"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을 보호무역 조치라고 생각하면 명백한 오해"

2023-03-07 11:03:24 게재

EU,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환경규제 공세 강화

"시장 중시하지만 유럽 권리도 보존해야" 주장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환경규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사진 이재호 기자


세사르 루에나 EU 의회 한반도 담당 의원(환경위원회 부의장·스페인)은 지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의회에서 내일신문과 만나 "CBAM을 보호무역 조치라고 생각하면 명백한 오해"라고 말했다.

세사르 루에나 EU 의회 한반도 담당 의원

루에나 의원은 "제 결론은 EU에게 CBAM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EU는 현재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게도 유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EU 입장에서 스페인 등 역내에서 생산하는 시멘트는 ETS 적용을 받지만 한국의 시멘트는 왜 적용받지 않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CBAM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할 경우 해당 제품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 추정치를 EU ETS와 연동해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다. 일종의 '탄소 관세' 개념으로, EU집행위는 미납 인증서당 1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시멘트 △수소제품 등 6개 품목에 대해 올해 10월부터 2025년까지 2년 3개월을 '전환기간'(보고의무 부과기간)으로 정하고 2026년부터 CBAM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ETS는 온실가스 배출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온실가스 감축 여력이 높은 사업장은 기준보다 많이 감축해 정부가 할당한 배출권 중 초과 감축량을 판매할 수 있다. 감축 여력이 낮은 사업장은 직접적인 감축 대신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다.

◆"환경보호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인 움직임" = 루에나 의원은 "EU는 시장을 매우 중시하지만 동시에 유럽의 권리도 보존해야 한다"며 "CBAM의 비전은 환경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방문한 EU 집행위원회에서도 CBAM은 EU의 보호무역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냐 가스파지노바 EU 집행위 대변인인(내부 시장·산업 담당)

소냐 가스파지노바 EU 집행위 대변인(내부 시장·산업 담당)은 EU가 수입을 규제하고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대해 "환경보호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인 움직임"이라며 "미국과 인도 등이 이러한 움직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는 EU 전체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에너지시장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진단했다.

그는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등 에너지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소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되, 불가피하게 배출한 만큼 흡수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다만 가스파지노바 대변인은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기에 각기 다른 속도와 가능성을 바탕으로 CBAM이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리엄 가르시아 페러 EU 집행위 대변인(무역·지역개발 담당)

미리엄 가르시아 페러 EU 집행위 대변인(무역·농업·지역개발 담당)은 "EU는 무역시장 개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환경규제로 유럽시장을 폐쇄하려는 게 아니라 다자간 협력을 통해 무역을 더 개방하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페러 대변인은 "우리는 세계적으로 단일화한 무역 규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혁신)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U-미국, GSSA 추가규제 추진 = 또 EU는 CBAM에 이어 미국과 함께 '지속가능한 글로벌 철강협정'(GSSA, Global Sustainable Steel Agreement) 등 추가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GSSA는 EU와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과잉 공급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는 협정이다.

가스파지노바 대변인은 "오는 10월까지 GSSA를 타결하는 것이 목표"라며 "EU와 미국은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GSSA 관련 협의도 잘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나 진행 상황은 '대외비'라며 말을 아꼈다. GSSA는 비시장지향적 공급 과잉에 원인을 제공하는 협정이다. 중국처럼 저탄소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의 시장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소집약 문제를 비롯 과잉공급에 대한 제재가 논의되고 있다.

GSSA는 EU와 미국 외에도 영국 일본의 참여가 예상되고 있다. 현재 한국은 협정국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GSSA가 CBAM과 함께 중복 규제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무협 "규제위주 정책은 근본적인 한계" = 한편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은 2일 벨기에 브뤼셀 현지에서 EU 의회 국제무역위원회 카린 칼스브로 의원, EU 집행위 기후총국 디아나 아콘시아 외교·기후 담당국장, 비즈니스유럽 루이사 산투스 사무차장을 잇달아 만나 한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 부회장은 "EU의 규제 당위성은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규제위주 정책을 통한 탄소감축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석탄 대신 수소를 투입해 철강재를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처럼 규제를 넘는 파괴적 기술개발에 대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빛나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EU의 환경규제는 CBAM처럼 특정품목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부터 제품의 전 라이프사이클을 아우르는 형태까지 광범위해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 지부장은 "무엇보다 법안의 도입 단계별로 우리기업의 의견을 수렴, EU집행위에 전달하고, 필요시 타국가 경제·업종단체와 협업해 다양한 채널로 기업 애로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매주 환경규제 동향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웨비나·보고서 등을 통해 기업의 구체적 대응방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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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벨기에) =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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