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내수소생산 25 프로젝트' 당장 시작하라
낮은 직급의 산하기관 직원에 불과했던 필자는 2006년부터 정부관계자를 설득해 '신재생에너지산업화 촉진전략'을 수립했다. 이 연구보고서의 핵심은 산업화가 촉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대규모 기술개발 투자를 꾸준히 하면 기술이 고도화되고 제품가격이 인하될 것이니 그렇게 하자는 주장과, 외산 설비라도 우선 많이 설치해 시장 규모를 키우면 기술개발은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거라는 견해가 상충하는 시기였다.
2007년 녹색성장전략이라는 새로운 경제성장 및 환경 패러다임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신재생에너지 산업화 촉진전략'은 마치 때를 맞춘 것처럼 정부전략의 키워드가 됐다. 그런데 막상 실행방안의 뚜껑을 열고 보니 필자가 애써서 만들고자 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 새롭게 불고 있는 수소경제를 바라보면서 필자는 기시감을 느낀다. 이름깨나 하는 기업들은 외국에 나가 기술이나 제품을 사들이기 급하다. 수소가 폭탄 취급당하는 와중에도 혹독한 곤란을 사명감과 희망만으로 견뎌온 중소기업들은 막상 파티가 시작되자 자신들이 할 역할이 별로 없다는 좌절의 근거를 보기 시작했다.
수소경제, 냉혹한 현실 인식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마다 수소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수소타운을 만든다고 한다. 정부는 세계 각국에서 수소를 사들이겠다고 한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비록 외국에서 생산되지만 자주적으로 개발한 것이니 에너지안보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아예 자급목표에 반영하기도 한다.
국가의 정책은 미래에 대한 전망과 설계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냉혹한 판단과 분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국제기구나 어느 나라가 그린수소 가격이 블루수소보다 낮아지고, 기술수준이 급격히 개선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고 그것이 마치 우리 상황인 양 이를 근거로 우리 앞날을 설계하는 것 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다. 냉혹한 현실인식을 근거로 지혜로운 계책을 내놓을 때다.
수소경제 로드맵에 따르면 2050년이면 국내에서 필요한 수소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수소는 화석연료에서 무탄소 에너지 시대로 전환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에너지전환 과정에는 수소의 생산저장 유통 활용 등 각 단계에서 해야 할 것이 참 많다. 각 단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기술개발, 수소 확보에 막대한 재정 투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부설 연구소의 주요 25개국 에너지안보 리스크 지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92년 이래로 만년 24~25위에 머물렀다. 우리가 이 많은 돈을 들여 수소경제를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화석연료시대에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했던 수급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수소의 해외의존 구조부터 바꿔야
이제 우리는 위험한 길을 걸을 용기를 내야 한다. 적어도 국내 수소수요의 25%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국내수소생산(DHP, Domestic Hydrogen Production) 25 프로젝트'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원자력, 해상풍력, 송전망이 확충되지 않은 태양광, 플라스틱 폐기물, 음식 쓰레기, 축산 폐기물, 해양 폐기물 등 이 수많은 자원들이 우리 앞에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