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영장심문' 놓고 법원-검찰 기싸움 격화
"제한적 실시로 밀행성 침해 없어" vs "대법원규칙 한계 일탈"
9일 전국 법원장 38명 회의, 사전심문제도 중지 모아 입장낼 듯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달 22일 경기도청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취임 이후에만 13번째 압수수색인데다가 김 지사의 업무용 컴퓨터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김 지사측은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도정 업무가 방해받고 도민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김 지사 컴퓨터에서 검찰이 가져간 것은 단 한 개의 파일도 없다"고 말했다(2월 23일 내일신문 '김동연 업무용PC도 압수수색').
대법원이 대법원규칙(형사소송규칙) 개정을 통해 압수수색 사전심문제도 도입을 추진하자 수사기관이 잇따라 공식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7일 입을 모아 "법원이 수사의 주재자가 되고, 피해자 보호와 수사의 밀행성·신속성에 배치된다"며 반대 입장을 내 놨다. 대법원은 "대면심리 자체가 임의적인 절차로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어서 수사 밀행성 확보에 지장이 없다"며 기우에 불과해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변호단체는 입장이 갈린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 변호사)는 "피의자가 장차 발부될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미리 대비하게 해 수사의 밀행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냈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조영선 변호사)은 "무분별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통제해 피의자 등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법률근거 없이 기본권 침해" = 대법원은 형사소송규칙 개정 및 압수수색영장 양식 개정 등을 통해 △압수수색영장 발부시 임의적 법관 대면심리수단 도입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서 기재사항에 집행계획 추가 △압수수색영장 집행 참여시 피의자 등의 참여권 강화 등을 추진한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을 방지해 피의자의 인권과 사생활의 비밀 등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기 전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형사소송규칙 제58조의2(압수수색의 심리)다.
대검찰청은 7일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Q&A'를 통해 "압수수색 심문제도는 법률에 근거가 없고 대법원 규칙 제정 권한 한계를 일탈한다"고 비판했다. 대검은 "수사기관이 제보자를 동행해 심문 절차에 출석해도 제보자를 통한 수사기밀 누설 우려를 전혀 해소할 수 없다"며 "개정안은 심문 대상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어 피의자, 변호인에 대해서 언제든지 심문이 가능하고, 피의자나 변호인을 심문하는 것 자체로 수사보안 유지가 불가능해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도 이날 "피해자 보호에 역행하고 수사의 밀행성에 반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법원규칙 형식의 압수수색 사전심리제도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도 제기했다. 헌법 제12조 1항은 누구든지 법률의 의하지 않고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이 아닌 대법원규칙을 통해 검사·수사기관 관계자·사건관계인 등에게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지는 압수수색영장 심문권이라는 권한을 창설해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은 판사가 압수수색영장 발부 여부 결정을 위해 의문점이 있는 경우 영장청구 검사에게 전화해 의문점을 해소하는 현재의 실무 관행과는 별도로 심문 절차를 통해 사건관계인을 심문하는 것은 수사의 지연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대검은 "압수수색영장이 증가했다는 것은 수사기관의 수사활동에 대한 사법통제가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압수수색 영장 증가로 인해 곧바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대법원은 뉴욕주 형사소송법에 영장심사시 법원은 선서하에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신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고 있지만, 미국 실무에서도 피의자 등을 심문하는 경우는 없다"며 "영장을 청구한 수사관이 판사를 대면해 선서하고 예외적으로 비밀정보원에 한해 비공개로 판사를 대면하는 절차가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무분별한 압수수색, 피의자 방어권 형해화" = 하지만 압수수색 심문제도 도입이 오히려 헌법과 법률에 합치되는 제도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헌법 제12조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강제수사는 범죄수사 목적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압수수색 심문을 통해 범죄수사에 필요한 경우에 한해 피의자의 범죄를 의심할 만하고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에 한해 압수수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관 대면심리 대상은 통상 영장을 신청한 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고 대면심리 자체가 임의적인 절차로 일부 복잡한 사안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어서, 형사소송규칙이 개정되도 압수수색 단계에서의 수사 밀행성 확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법관이 압수수색의 필요성, 대상의 특정 등 요건 구비 여부에 관해 수사기관 등의 대면 설명을 청취할 수 있는 절차"라며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법관에게 수사의 필요성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판단할 권한을 인적·물적 독립을 보장받는 제3자인 법관에게 유보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상 영장주의의 본질"이라며 "수사절차에서의 사법통제가 반드시 필요한 점, 대면심리 수단 도입으로 피의자나 피압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변은 뉴욕주 형사소송법 외에도 미국 연방형사소송규칙, 캘리포니아 주 형사법을 들며 "미국에서 압수수색영장 발부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청문회에 가까운 수준의 심리가 허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9일부터 1박 2일 동안 충남 부여군에서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어 '압수수색 영장 실무의 현황과 적정한 운용 방안'을 주제로 토의한다. 간담회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과 전국 법원장 38명이 참석한다. 간담회 후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리제와 관련해 법원장들이 어떤 입장을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