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통사고, 실질적 상해인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교통사고는 피해자의 상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범죄가 구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충격이 발생해야 형사상 상해라고 인정될까?
'시속 10km 수준으로 움직인 승용차가 충격한 경우 충격량이 놀이공원 범퍼카로 인한 것보다 1/3 수준으로 낮고, 30명의 추적관찰 결과 의학적으로 상해진단을 받은 피실험자가 없다'는 취지의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경미한 접촉사고에도 과다한 의료비를 청구하는 실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취지로 이해된다.
형사상 상해는 보상의무 부여를 넘어 처벌 여부를 좌우하기에 피의자에게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아 신중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법리적으로는 '신체의 완전성 훼손'을 의미하고 자연치유가 가능한 정도라면 형사상 상해로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실무적으로 피해자가 불편감을 호소하는 정도로도 '2주의 치료기간을 필요로 하는 상해' 진단서는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데, 진단서가 수사기관에 제출되면 기계적으로 상해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진단서 발급의 용이성에 비해 피의자의 법익(법으로 보호되는 이익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큰 불균형이 수사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CT나 MRI 등 검사없이 상해가 인정됨은 의사의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범죄의 구성요건 존부(존재 유무)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에서는 진단서 기재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상해 여부와 그 인과관계에 대한 추가 수사를 해야 한다.
진단서 제출에 따라 달라지는 상해인정
이러한 점에서 자주 활용되는 것이 '마디모 감정' 프로그램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블랙박스영상 등만 가지고 물리적인 충격량 등을 계산한 다음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상해 여부 및 충격과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감정한다. 앞 실험과 유사한 취지다. 많은 경우 '감정불능' 결과가 회신되지만 '인과관계가 낮(높)다'는 취지의 회신도 적지 않으며, 이런 결과를 근거로 상해가 부정되는 사례 또한 적지 않다.
그 외에도 도로교통공단이나 여러 민간 기관에서도 이러한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감정의뢰 여부 역시 전적으로 수사기관의 재량에 달려 있다. 결국 피의자는 어떠한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수사과정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일 수 있다.
교통사고 피의자의 변호를 해 보면 참으로 황당한 때가 많다. 충격이 경미함을 주장하면 '진단서를 제출해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반응이 대다수다. '진단서 제출 여부에 따라 상해인정이 달라지는 것이 정당한지' '수사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주장에도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현장에는 상해 여부에 대한 실질적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훌륭한 수사관들도 많다. 그러나 수사관의 선의나 역량에 기대어 실질적인 상해여부 판단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권위와 전문성이 인정되는 기관에 상해 여부 및 충격과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감정을 의무적으로 의뢰해 수사에 참고하도록 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전문기관 '감정' 의무화 시스템 필요
이를 의무화한다면 당사자 모두 수사결과에 납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교통사고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비용을 전반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