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의 새 핵전략 - '핵 비확산 레짐의 딜레마' 공략하기

2023-03-14 11:47:55 게재
김정호 국방대학교 교수

북핵 위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북한의 도발로 인해 어느 때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지시했으며 연초에는 "전쟁억제 실패 시 핵무력은 제2의 사명 결행" 등 유사시 선제적 핵무기 사용 의지를 재천명했고, 남쪽 전지역을 전술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600mm 방사포 시험 발사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은 1946년 김일성대학에 기초 핵 이론을 다루는 물리수학부를 개설하면서 모스크바대학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했고 훗날(1965년) 북한 원자력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역임한 리승기 박사를 교수로 초빙한다. 그리고 1956년부터는 구소련의 '두브나 합동 원자력연구소'에 연수생을 파견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핵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결국 북한은 그저 수세적 반응이 아닌 체제생존·번영이라는 공세적 수단으로 핵을 개발한 것이다. 핵 포기를 요구한 미 트럼프와의 협상 결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핵전략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서 협상을 통해 제재를 해제해 현재와 같은 '김일성 조선'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것이지, 핵(개발)을 포기한 리비아나 우크라이나처럼 비핵국가의 설움이 움틀 '싹'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 사정은 녹록치 않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래 최악의 식량난이 올해 북한을 덮칠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경로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왜 더 첨예한 제재를 불러올 핵 능력 고도화와 역내 핵·재래식 전쟁위협을 상시화하는가? 차라리 경제·식량난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 정권 안정에 유리하지 않은가?

미국 세계전략과 핵 비확산 레짐의 딜레마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과 군비경쟁을 해야 하는 약소국은 재정이 파탄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대칭 무기인 핵무기는 일정 능력 이상만 확보하면 적대국의 군사력 수준과 상관없이 전쟁 억제력을 가지며, 선제공격을 당한 후 상대국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는 이른바 '2격 능력'까지 갖춘다면 그 억제력은 급격히 높아진다.

반대로 '인류 멸망' 가능성을 높이는 핵무기 확산은 강대국의 세계전략과 '군사적 압박' 수단의 효용성을 낮추기에 핵 비확산 레짐(regime)을 주도하는 미국은 북한처럼 적대적인 핵무장(추진) 국가를 제재와 보상으로 압박·회유한다. 그리고 한국처럼 핵 위협에 직면한 우방국에는 핵우산을 씌워 안보불안을 제거하는 '확장억제 제공' 카드로 우선 대응한다.

하지만 프랑스가 핵무장을 반대한 미국에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처럼 적대국의 '핵무기 제2격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한국과 일본에는 '핵 위협 노출'이라는 위기의식이 확산함으로써 '자체 핵무장 여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우방국조차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다. 핵확산 용인은 '핵 도미노' 현상 등 비확산 레짐을 무력화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은 현재 중국과 전략경쟁 중이며 대중전략의 핵심은 미·일·호주·인도의 '쿼드', 미·영·호주의 '오커스 동맹' 등 다자간 포괄적 안보 체제 구축이다. 때문에 미국은 과거사 문제로 얼룩져있는 한국과 일본을 안보공동체로 묶는 동북아 한·미·일 안보체제 구축을 포기할 수 없다.

여기에 북한이 경제난 속에서도 제재 심화를 초래할 핵 능력 고도화와 핵·재래식 전쟁 위협을 상시화하는 이유가 숨어있다.

북한, 직접 대미압박 대신 틈새 벌리기로

김정은정권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의 핵 협상을 위해 사용했던 '괌 포위사격' 등 미국을 직접 압박하던 방법 대신 핵 비확산 레짐의 딜레마를 공략해 대미 협상장의 문을 열려고 한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더 큰 난관에 직면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미국과 갈등 중인 중·러의 수수방관과 지지 속에 다양한 강도의 '도발'을 한·일 국민의 자체 핵무장론을 촉발할 불쏘시개로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비핵화 우방국인 우리가 국익 최대화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