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수능 현장반응
통합수능, 교차지원한 학생들은 지금?
휴학생 급증, 일반편입도 늘어 … "여러 성향의 학생들 모여 시너지 클 것" 긍정론도
대입에서 교차지원이 큰 화두다.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40% 선발과 선택과목별 유불리를 이용해 수학에서 표준점수에 유리한 '미적분'과 '기하' 선택자들이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주요 대학들이 자연계열 학과에 수학과 탐구를 지정한 반면, 인문계열 학과엔 지정과목이 없어 인문계열 수험생 입장에선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2023학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그러자 교육부 장관이 교차지원을 언급할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큰 쟁점이 되었다. 정시 3장 중 2장은 자연계열로, 1장은 인문계열로 지원한 학생들도 꽤 많았다. 2022학년에 입학한 학생들이 이제 2학년이 되었다. 고교 때 생각했던 계열과 다른 계열로 입학한 학생 중 일부는 재도전으로 올해 다시 1학년이 됐고, 일부는 해당 학과에 남아 다전공이나 복수전공 등을 고민하며 또 다른 앞날을 그린다.
교차지원 그 후, 대입과 대학, 고교 그리고 수험생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통합 수능의 취지대로 인문과 자연계열의 경계가 무너졌는지 살펴본다.
2022학년에 이어 2023학년 정시에서도 교차지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정시모집에 실제로 지원한 대학을 진학사에 공개한 수험생들을 분석한 결과 인문계열 모집단위에 지원한 학생 중 과학탐구 응시자의 비율은 2022학년 25.88%에서 2023학년 27.04%로 증가했다.
대학별로 보면 서울대 인문계열은 지원자의 53.75%가 과학탐구를 선택했는데 이는 2022학년 44.7% 대비 증가한 수치다. 연세대도 2022학년 52.26%에서 2023학년 67.42%로 상승했다.
◆반수 증가, 정시 확대와 교차지원 등 복합 요인 = 강경진 서강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교차지원으로 대입에 한번 더 도전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꼭 교차지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가 40%로 확대됐고 수시모집에서도 졸업생의 지원 제한이 거의 없어 한번 더 대입에 도전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입시컨설팅업체 유웨이가 한 학기 정도 대학에 다닌 시점에서 반수 희망자 비율을 조사한 설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문계열로 교차지원한 이과생의 반수 비율은 60.9%로 가장 높았지만 자연계열로 지원한 이과생 48.9%, 인문계열로 지원한 문과생 40.4%, 자연계열로 교차지원한 문과생도 31.6%에 달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더불어민주당 ·비례) 의원과 종로학원은 2018~2022학년 5년 동안 서울 소재 16개 대학 인문·자연·공학 계열별 휴학 경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인문계열의 휴학생 비율이 많이 증가했다. 5년 전인 2018학년에는 인문계열 휴학생이 자연계열 휴학생보다 3.8% 높았지만 2019학년 4.4%, 2020학년 5.8%, 2021학년 5.8%에서 2022학년엔 8.8%로 증가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이사는 "2022학년에 인문계열 휴학률이 더 증가하면서 격차가 커진 것은 통합수능에 따른 교차지원과 반도체 및 첨단학과 육성,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여러 정책이 자연계열에 집중되면서 인문계열의 고민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자연 계열 정시 선택 폭 확대 = 통합수능과 정시 교차지원으로 계열별 수시지원 양상도 달라졌다. 수능에서 예년보다 우위를 차지한 자연계열 수험생이 증가한 데다 교차지원까지 염두에 두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자연계열 학생들은 수시모집에서 좀 더 과감한 지원 전략을 세웠다면 인문계열 수험생은 안정적으로 지원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결과를 발표할 때 등급내 선택과목 비율을 밝히지 않지만 서울중등진학연구회를 비롯해 입시 기관들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수능 수학 1등급 중 '확률과 통계' 선택자는 약 6~7%에 불과하다.
만약 성균관대 공학계열에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라면 연세대와 고려대 인문계열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정시는 가·나·다군 3개의 원서만 쓸 수 있는 데다 다군에 배치된 대학이 많지 않아 결국 가군과 나군 2곳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임 대표이사는 "수험생이 감소하고 수시 전형에서 상위권 학생의 합격이 많아져 정시 상위권 자원이 줄었다"며 "반면 정시가 확대되면서 모집인원이 많아져 전반적인 정시 경쟁률이 하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차지원 후 선택에 있어서는 상위권 대학에서는 전공보다 대학을 우선하지만 중상위권 이하 비슷한 대학에서는 전공 위주로 선택하는 양상도 두드러졌다.
학과에 만족하며 다전공이나 복수전공 또는 재도전 선택과목별 유불리, 정시 확대와 교차지원을 지켜본 고등학생들은 자연계열, 즉 '미적분' 또는 '기하'와 과학탐구를 선택해야 대학 가기가 수월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진로나 적성보다 자연계열 선호가 두드러졌다. 자연계열 진학을 염두에 두었으나 막상 원서를 쓸 땐 마땅히 쓸 학과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교차지원으로 성공한 학생 중 이런 경우도 일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 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은 "교차지원 후 만족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비율과 재도전하는 비율은 체감상 절반인 것 같다"며 "경영·경제학과는 아무래도 수학 역량이 중요해 교차지원한 학생들이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고교는 과학중점학교를 다녔지만 디지털 제작 기술이나 영상에 관심이 많아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진학한 A씨는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어 좋지만 2학년이 되면서 취업을 고려해 전자전기공학부 복수전공을 신청했고 서울과 수원 캠퍼스를 오가며 수업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도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종단연구를 통해 학업성취도나 학과적응도, 중도이탈 등을 살펴보고 있다.
방유리나 건국대 입학사정관은 "2022학년에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학생 중 학사경고를 받거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일부 있지만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점이 높은 전공들도 눈에 띈다"며 "특히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가 필요한 사회과학계열이나 상경계열은 자연계열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설명한다.
◆대학도 통합 수능 세대에 대한 모색 필요 = 대학은 융합전공 자유전공을 비롯해 다전공이나 복수전공 등 다양한 학사제도를 운영한다. 계열에 국한하지 않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생각보다 혼란이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인문·자연 구분 없이 모인 학생들이 해당 전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만큼 학생들을 어떻게 성장시키느냐는 대학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강 책임입학사정관은 "인위적으로 지원 자체를 막는 것보다 통합 교육과정을 배우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전공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에 대해 교수들의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방 입학사정관도 "통합선발이라는 현 대입 상황을 막을 수 없다"며 "오히려 대학이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통합선발된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조용상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심리학부는 인문 자연 융합 학문인 데다 최근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디지털 세상에 맞춰 교육과정이 변화하고 있다. 심리학부에서 진출할 수 있는 영역도 다양해져 학생들의 이탈이나 적응과 관련해 큰 고민은 없다"며 "여러 성향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시너지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수 기자 · 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