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화하는 일본의 스타트업 정책
꽁꽁 얼어붙었던 한일관계가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심각한 갈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다. 질서와 조화, 그리고 안정을 중요시하는 일본에서는 눈에 띄는 스타트업 정책이 없었다.
그런 일본이 바뀌고 있다. 2021년 10월 말 기시다내각은 출범하자마자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기치 아래 스타트업 육성과 디지털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었다. 이어 겸임이긴 하지만 대신 한명을 스타트업 담당으로 임명하고,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4개 대도시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 같은 스타트업 특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2022년 11월 말에는 그 완결판인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크게 창업인재육성, 투자자금조달, 대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확대 등 3부문에 걸쳐 있다. 그 추진 속도부터 매우 혁신적이다. 일본인답지 않게 5년 이내에 스타트업 10만개와 유니콘기업 100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2022년 6월 말 기준 일본의 유니콘 기업 수는 11개이고 스타트업 투자액은 8000억엔 정도인데, 이를 불과 5년 만에 10배 이상 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창업인재,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육성
특히 눈에 띄는 정책으로 '데지마 사업'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창업인재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아직 스타트업 생태계가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일본 국내보다는 창업희망자를 아예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로 보내 처음부터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기르겠다는 계획이다. 또 미국의 명문 대학에 일본 기업가 육성 MBA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앙트레플래너(entrepreneur)' 프로그램도 있다.
투자재원의 경우 공급부터 출구전략까지 다양한 경로를 마련한다는 방침 아래 10조엔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제조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도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데지마 사업'이다. 데지마는 현재 나가사키 항구 앞바다에 부채꼴 모양으로 붙어 있는 조그만 인공섬이다. 에도 막부는 1634년 이 섬을 조성한 뒤 서양국가들 중에는 네덜란드에게만 교역을 허락했고, 1859년까지 데지마를 왕래하는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서양의 근대과학기술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일본에 주목하지 않는 동안 일본은 변하고 있다. 제조 강국, 장인의 나라 일본이 자신들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개방과 혁신의 스타트업 정신으로 제2의 창업 붐을 일으키겠다는 선언에는 일종의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대외개방에 나섰고 1990년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벤처 육성, 스타트업 육성에 나섰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빨리 스타트업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 교류로 양국 활력 찾았으면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곡이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였는데, 두 나라의 스타트업 교류에까지 이어져 경제도 사람도 어려운 이 시기에 두 나라 모두 다 활력을 되찾는 계기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