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시다가 들고올 선물 보따리가 궁금한 이유

2023-03-28 11:59:55 게재
권영근 국방개혁연구소 소장, 한국국방연구원 전 감사

윤석열-기시다의 한일정상회담은 한미일 공조 강화를 위해 한국이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등과 관련해 대거 양보한 경우라고 한다. 여기에는 한미일 공조강화가 한국 입장에서 상당한 이득이란 계산이 전제되어 있어 보인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한국 입장에서 과연 이득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된 1954년부터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강조했다. 그러나 냉전 당시 일본은 미국의 한미일 공조 요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은 미 7사단과 같은 주한미군 전력을 철수시키는 등 미국이 한반도 공약을 약화시키는 경우에나 한일공조를 추구했다. 미국이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노력할 당시에는 한일공조를 거부했다.

이는 한반도를 통한 공산세력의 위협을 가능한 한 미국과 한국이 감당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 일본이 부질없이 연루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적개심에도 불구한 공조 - 한미일 안보 삼각형(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이란 제목의 저서에서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Victor Cha)는 이처럼 지적했다.

한미일 안보 공조 부정적이었던 일본의 변화

이같은 일본의 입장은 한중관계와 한러관계 정상화로 북한과 비교한 한국의 국력이 상당히 막강해진 반면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현상변경 욕심을 노정시키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즈음부터 급변한다. 일본이 북한 위협 운운하며 한미일 공조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한국과 비교해 북한이 상당히 막강하던 냉전 당시에도 가능한 한 한미일 공조를 거부하던 일본이 남한과 북한의 전력이 역전된 냉전 종식 이후 북한 위협 운운하며 한미일 공조를 외쳐댄 배경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냉전 종식 이후, 적어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 10월 이전의 북한 위협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핵위협을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의존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오늘날에도 북한 위협은 한국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1990년대 말 경 이후의 일본의 한미일 공조 주장은 북한 위협 때문이 아니고 중국 위협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1998년 이후부터 일본은 센카쿠열도 문제를 놓고,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중국의 패권 부상 저지 차원에서 중국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한국은 무엇 때문에 중국과 대립해야 할까?

미국이 독자적으로 중국과 대립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문제는 이 같은 대립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경우 미 본토에 중국의 핵폭탄이 투하될 가능성이다. 미국과 일본이 공조해 중국에 대항할 때의 문제는 중국이 일본을 겨냥하여 폭탄을 발사할 가능성이다. 미국과 일본의 위정자 입장에서 보면 가능한 한 자국 영토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오늘날 한미일 공조를 외치는 이유에는 중국이 발사하는 폭탄이 자국을 대신해 한국에 떨어지게 만들어야 할 것이란 인식이 전제된 것은 아닌가? 냉전 당시 일본이 한반도 전쟁에 연루될 가능성을 우려해 한미일 공조를 거부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센카쿠열도 문제 등으로 중국과 일전도 불사해야 할 일본의 한미일 공조 주장에는 한국을 중국과의 싸움에 연루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과 싸울 때 자국을 대신해 한반도를 희생시켜야 할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일본과 미국이 공조강화 대가 지불하게 해야

이 같은 논리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가능한 한 한미일 공조 노력에 동참하면 곤란할 것이다. 설령 동참해야 한다면 동참 조건으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대가를 얻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그러한데 윤석열정부는 한미일 공조 강화 조건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지난 수년 동안 한일 간에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과 관련해 일본에 많이 양보해주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방한 당시 기시다 총리가 들고 올 선물 보따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