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원자를 직접 보려는 시도와 전자현미경

2023-04-11 11:00:48 게재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20세기 물리학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이 사실을 확고부동하게 정립한 것이다. 그러나 원자를 직접 관찰하지 않고는 그 존재를 믿기 어렵다는 주장도 상당 기간 존재했던 터라 원자를 직접 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원자의 크기는 매우 작다. 수소원자의 직경이 약 1/100억미터 정도이니 원자를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미경 같은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본다'는 것은 어떤 광원에서 나온 빛이 보는 대상 물체에 반사된 뒤, 눈의 수정체로 들어와 망막의 시신경을 자극하고, 이 자극이 뇌로 전달되어 인지되는 전과정을 말한다. 인체의 시신경은 가시광선 파장 영역(380~740나노미터)에서만 반응하므로, 반사된 빛이 이 영역에 있을 때에만 어떤 대상을 직접 볼 수 있다.

가시광선은 원자핵 주변에 퍼져 있는 전자들과 반응해 흡수되거나 반사되므로, 본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빛에 대한 전자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즉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그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전자를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특징 이용해 원자 관찰하기

원자를 직접 보려면 광학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광학렌즈 배율을 아무리 높여도 '회절한계' 때문에 사용하는 빛의 파장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없다. 가시광선 파장보다 훨씬 작은 원자를 구별해 내기는 어렵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엑스선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눈으로 엑스선을 직접 관찰할 수 없다. 물론 엑스선에 감광된 필름을 통해 얻은 사진으로 몸속 뼈 모양을 알 수 있듯이, 어떤 장치를 사용해서 이미지로 바꾼 다음에 눈으로 보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전자의 특징을 이용해야 한다.


전자는 양자역학적으로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전자를 10만볼트 전기장에서 가속시켜 100킬로전자볼트 에너지를 가지도록 하면, 드브로이 물질파 파장이 3.7피코미터(0.0037나노미터)가 된다. 이는 수소원자보다 약 27배나 작은 크기이므로 원자 크기의 물체를 관찰하더라도 회절한계 문제가 없다.

게다가 현대기술로 이 정도 파장의 전자빔을 구현하는 것은 엑스선이나 감마선 생성보다 쉽다. 또 광학렌즈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전자빔렌즈 역시 전기장과 자기장을 조합해 만들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의 결합으로 나온 전자현미경으로 원자 크기에 근접하는 물체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눈으로 원자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면에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법에는 투사(projection)와 주사(scanning)가 있다. 투사는 인간의 눈이 망막에 혹은 카메라렌즈가 필름에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한편 주사는 텔레비전 화면에 한 줄씩 또는 한 픽셀씩 이미지가 형성되는 방법을 말한다. 전자현미경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전자빔을 아주 작은 크기로 모은 뒤 이를 어떤 물체에 입사하면 물체에서 다시 튀어나오는 전자를 이용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사'전자현미경(SEM)이고, 또 하나는 아주 얇은 시료를 투과한 전자빔이 투사로 이미지를 형성하는 '투과'전자현미경(TEM)이다.

처음 발명된 전자현미경은 당대의 광학현미경에 비해 훨씬 작은 물체를 볼 수 있었으나 원자 하나를 관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재에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원자 하나를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입사하는 전자빔은 원자 크기로 작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에너지가 높아서 물질 속 수백개의 원자와 충돌하면서 넓은 범위로 튀어나오는 전자를 검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과전자현미경을 사용하면 시료 두께가 원자층 몇개 정도로 매우 얇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는 해도 원자를 하나씩 뚜렷이 구분해서 관찰할 수 있다. 오늘날 초정밀 반도체 소자에 사용되는 미세구조의 크기가 수십 원자층 정도이니 이들의 원자배열 구조를 분석하는 데 투과전자현미경은 꼭 필요한 도구다.

원자를 볼 수 있는 최신 기술로는 뾰족한 탐침을 이용하여 원자를 하나씩 관찰하고 이를 조작할 수 있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이라는 것도 있다.

원자 시각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원자를 보려는 과학자들의 꿈은 결국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원자에 대해서만 가능하고, 시료 내부에 있는 임의의 개별 원자 모양이나 위치를 알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탐구 대상으로서 원자를 어떤 방법으로든 시각화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관찰가능한 원자에 대한 제약 조건은 하나씩 제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