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여야 신뢰, '위원 추천권' 무력화
2023-04-11 11:08:17 게재
극단 인사 추천에 암묵적 용인 관행 깨져
'편향 의혹' 과거사 위원·방통위 상임위원
북한인권재단 이사·특별감찰관 추천 '정쟁용'
선거구획정위, 추천자 사전거부권 효과적
11일 모 더불어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최민희 전 의원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임명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총선으로 갈수록 양 정당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민주당 단독 통과와 최 전 의원의 강한 야당 성향이 윤 대통령과 여당의 강한 거부 의지로 작동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야가 추천권한이 있고 최 전 의원은 야당 몫인데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 주관적인 이유로 본회의에서 통과된 인사안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했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추천 몫이 보장돼 있다"며 "국회가 정한 추천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걸 대통령이 툭하면 무작정 거부권을 행사하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부상한 야당의 여당 몫 과거사정리위원 부결 = 여당은 여당몫이었던 이제봉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 선출안을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것을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2월 24일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부결이) 당론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했지만 투표전 민주당 의원들이 참여하는 SNS에서 이제봉 후보의 편향적 발언 등이 올라와 부결을 부추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각 정당이 위원을 추천하면 서로 양해해서 통과시키는 게 국회의 오래된 관례인데 민주당이 의석이 많다고 비토를 한 것 같다"며 "앞으로 우리 당이 추천을 해야 하는 위원은 민주당 결재를 받고 추천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왜곡되고 편향된 주장을 일삼는 사람을 국회에 추천 받으려고 내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여야, 특별감찰관·북한인권재단 6~7년째 막아서 = 여야는 서로의 이해에 따라 주어진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기도 했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여당은 대통령 측근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후보를 추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의 의지가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2015년 3월 박근혜정부 시절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임명되면서 시작했지만 2016년 9월 사실상 경질된 후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선임 의지를 보이기도 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후보를 추천하지 않았다. 청와대와의 의견조율 결과로 보인다. 특별감찰관법에서는 30일내 임명토록 하고 있다. 6년 6개월 이상 법위반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의 최민희 후보 임명 거부 가능성에 대해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전날 라디오에서 "방송통신위 설치법에 따르면 상임위원 중 결원이 생겼을 때 결원된 날부터 지체없이 보궐위원을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명확한 방송통신위원회법 위반"이라고 했다. 특별감찰관법을 통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역시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국민의힘은 법 위반을 알면서도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또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하지 않아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됐지만 인권재단 이사가 채워지지 않아 7년째 첫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야 인사 추천 취지 살려야 =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대법관 등 많은 기구 인사들에 대한 국회 여야 추천권이 대결구도의 대리전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여야가 불신이 팽배해 있다"며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의 불신이 추천권이 행사되는 기구로 옮겨붙고 있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MBC 사장을 지낸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는 "(방통위원회 상임위원에 정파적 정치인을 추천하는) 이런 식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네 방통위원에 지독한 정치인을 임명하고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좌지우지하는데 대해 어떤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비판 대상과 수준이 똑같아지는 것밖에 소득이 없을 것이다. 원칙을 지켜야 비판할 수 있고 진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선거구획정위원이 거대양당 추천권으로 구성,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결국 두 정당에게 상대 정당 추천자에 대한 거부권을 허용, 극단적 인사의 진입을 막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구획정위의 사전거부권이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선거구획정위에 참여했던 모 교수는 "두 정당에서 자기 정당 입장만을 고려하는 인사를 추천하다보니 대리전만 펼쳐졌다"면서 "상호 기피를 허용한 추천을 해보니까 확실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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