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공수처, 수사 혼선

2025-01-07 13:00:38 게재

체포영장 집행 돌고돌아 공조본 체제로

‘떠넘기기’ 비판 … 윤 대통령측 반발 키워

12.3 내란사태에 이어 내란 수사과정에서도 법치가 흔들리고 있다. 일차적인 책임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측에 있지만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지 못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책임도 적지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발부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이 전날 만료됐지만 공수처는 결국 기한 내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1주일의 체포 기한 중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선 건 지난 3일 한 차례 뿐이다. 당시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30여명은 120여명의 경찰과 함께 대통령 관저를 찾아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지만 대통령경호처의 저항에 부딪쳐 5시간여 대치 끝에 물러나야 했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관련 업무를 경찰에 일임하겠다는 공문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발송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이후 다시 영장 집행을 예상한 시민들은 공수처의 길을 터주기 위해 폭설까지 견디며 2박 3일간 집회를 이어갔지만 공수처는 영장 집행 재시도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영장 만료를 하루 앞둔 5일 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경찰과의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경찰의 영장 집행 전문성과 현장 지휘체계의 통일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공수처의 설명이지만 경호처와의 충돌 등 위험 부담이 따르는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떠넘기려 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공문을 받은 경찰청 국수본은 내부적 법률 검토를 거쳐 공수처가 보낸 공문에 법률적 논란이 있다고 판단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선 공수처와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공수처가 “(기존) 공조수사본부 체계 하에서 경찰과 잘 협의해 체포영장 집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히며 영장 집행 일임 결정을 철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은 유지하면서 위험 부담이 큰 영장 집행만 경찰에 떠넘기려 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렇지 않아도 공수처는 수사능력과 의지를 의심받아 왔다. 지난 3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당시에도 경찰 수사관 중 일부가 박종준 경호처장 등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경호처 관계자들을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으나 공수처가 물리적 충돌 등을 우려해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6일 브리핑에서 “기껏해야 50명인 검사·수사관 인력이 200명이 짠 스크럼을 어떻게 뚫겠냐”며 “영장 집행의 전문성은 공수처에 없고, 경찰의 인력 장비 경험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수처의 영장 집행 능력과 전문성 부족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비판은 오동운 처장으로까지 향하고 있다. 그는 내란 사태 이후 국회에서 “내란 수사는 구속 수사가 원칙”이라고 강조하는 등 여러 차례 강한 수사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공수처는 사건 이첩 요구권을 행사해 검찰과 경찰로부터 윤 대통령 수사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을 넘겨받은 공수처는 아직껏 별다른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X맨 공수처장”이라고 적었다. 오 처장이 이끄는 공수처의 무능이 윤 대통령 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놓고 갈팡질팡하자 윤 대통령측은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측 윤갑근 변호사는 “공수처의 법적 근거 없는 수사 행태를 지켜보며 국가기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공수처는 기존 공조본 체계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로 하고 법원에 영장 유효기간 연장을 위해 재청구한 상태다.

공수처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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