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김경범 교수의 공공장(Public Factory)

수능이 공정한 게임이 아닌 까닭

2023-05-10 11:28:36 게재

김경범 서울대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경범 서울대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교수

4월 27일 젊은 교사들로 구성된 정책연구단체 '교육랩 공공장'은 국회 강득구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2023학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시모집 입학생 선발결과'를 바탕으로 고3 학생과 N수생의 분포, 지역 분포와 특성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는 3월 23일에 공개된 '2020~2023학년 전국 의과대학 정시모집 입학생 분석'에 이어 현재 수능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다.

여기에는 전국 치과대학과 한의대의 정시 모집 결과도 처음 포함됐다. 수능으로 누가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지 확인했다는 데 이 자료의 의미가 있다.


수도권과 N수생의 압도적 정시 합격 비율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최근 4년간 정시 모집 합격자 지역 분포에서는 서울 쏠림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이 42.1%로 압도적이었고 경기도는 29.5%로 서울과 경기가 71.6%를 차지했다. 여기에 인천까지 더하면 수도권이 73.7%를 차지한다.

서울과 경기에 비해 다른 지역은 터무니없이 낮다. 대구(4.2%) 부산(3.6%) 전북(3%) 충남(2.2%) 인천·경남·광주(2.1%) 대전(2%) 경북(1.7%) 울산(1.3%) 강원(1.1%) 전남(1%) 충북(0.9%) 제주(0.6%) 세종(0.4%) 해외(0.1%) 순이다.

이 세 대학의 서울 학생 수치는 전국의과대학의 서울 학생 수치보다 높다. 이는 인문 계열 수능 최상위권 학생,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 학생들이 지방으로 분산되지 않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몰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국 의과대학 합격자 중 서울 학생은 36.3%, 경기 학생은 19.1%였다.

2022년 4월 1일 기준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생 126만2348명 중 서울은 16.4%(20만7388명), 경기는 27.0%(34만895명)를 차지한다. 전국 대비 각 지역 고등학생 비율과 비교하면 세 대학의 정시모집 합격자는 서울에서 2.6배, 경기에서 1.1배가 더 들어온다.

세번째로 합격자가 많은 대구 지역의 고등학생 수가 전국 대비 4.7%(5만9373명)이고 이 세 대학에는 4.2%가 합격했으므로 전국 대비 비율보다 낮은 수치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네번째인 부산의 전국 비율은 5.6%(7만161명)인데 3.6%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전국 대비 고등학교 비율보다 높은 지역은 서울과 경기인데 경기가 1.1배이니까 사실상 서울 지역 고등학생이 압도하고 있고 다른 지역은 수치가 미미해 높낮이를 재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개별 대학의 비율을 보면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서울 학생이 46.3%로 가장 높았고 연세대는 44.1% 고려대는 36.7%였다. 특히 서울대는 2023학년에 서울 지역 학생의 선발 인원과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서울대의 정시모집 선발인원은 2020학년 837명, 2021학년 770명, 2022학년 1062명, 2023학년 1393명이었다. 이미 2018년에 서울대가 밝혔듯이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정시모집 선발인원을 늘린 결과 서울 학생이 늘어났고 그만큼 지방학생이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정부 요구에 따라 서울대는 2024학년에도 정시 모집 선발 인원을 더 늘린다. 따라서 올해 정시 모집에서도 서울 학생의 수는 더 늘어난다고 예측할 수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정시 모집 총원도 2020학년 3131명에서 2023학년 5093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정부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2022학년부터 서울 16개 대학에 정시모집 선발인원을 40%로 늘리라고 사실상 강제했기 때문이다. 서울 학생이 늘어나는 결과가 공정성을 보여준다니 이런 공정성은 수긍하기 어렵다.

2020~2023학년 세 대학의 정시모집 합격자 중 재학생 비율은 36.0%로 2020~2022학년에 35%대에 머물다가 2023학년에 37.0%로 조금 올랐다. 반면 N수생은 61.2%로 큰 변화 없이 61%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3학년에는 60.7%였다.

정시모집에서 N수생 강세는 이미 고착화되었다. 재수생 비율은 44.1% → 42.5% → 38.8%로 감소하다가 2023학년에는 41.1%로 약간 증가했고 삼수생 이상의 비율은 17.1% → 18.8% → 22.7%로 증가하다가 2023학년에 조금 줄어들어 19.7%였다.

이는 전국 의대 정시 모집 선발 결과와 같은 경향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N수생의 비율을 보면 서울대 58.2% < 연세대 60.0% < 고려대 64.6% < 전국 의대 77.5% < 전국 치대 79.4% < 전국 한의대 82.7%였다.

전국 의과대학 정시모집 합격자의 77.5%가 N수생이었는데 이 세 대학에서는 N수생 수치가 그보다 낮은 61.2%였다는 사실은 N수생의 진학 목표가 의학계열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준다.

우리 사회에 대안을 마련할 의지가 없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세 대학의 정시모집에서 서울 지역 학생과 N수생이 주로 합격하고 있다. 의학계열도 마찬가지다. 정시모집으로 이 세 대학과 의학계열에 합격하려면 고교 졸업이 필수라는 항간의 소문이 틀린 말이 아니고 재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2022년 사교육비 통계에서 학부모는 중학교 사교육에 약 7조1000억원, 고등학교 사교육에 7조원을 지출했다. 이 지출은 과연 가치 있는 지출이었을까. 여기서 우리가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수능은 공정한 신분 상승의 도구인가? 이 질문은 이 세 대학과 의학계열에 가면 신분이 상승하는가, 수능은 공정한 평가도구인가 등으로 파생된다.

먼저 서울대 졸업장이 신분 상승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또 의학계열에 진학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신분 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욕망하고 안정적으로 먹고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는 대학생들은 취직보다 창업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수능으로 선발하는 현재 정시모집은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 아이들의 능력과 태도와 자질을 키워주지 못한다.

수능은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우는가? 그렇지 않다. 한 문제를 1분 혹은 1분 30초 안에 풀어야 하는 시험은 생각할수록 오답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수능에서는 연습한대로 기계적이고 직관적으로 답을 골라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연습, 즉 반복적 문제 풀이가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과 태도, 특히 사람을 잘 사귀고 협력할 줄 아는 자질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지만 수능문제집을 반복적으로 풀어대면 그런 능력과 자질을 키울 수 없다. 아이와 학부모가 욕망하는 부를 얻으려면 수능으로 얻는 졸업장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키워야 하지만 수능은 그런 능력과 자질을 기르는 데 오히려 해가 된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대학입시는 시대에 뒤처진 인식이 만들어놓은 가짜 통과의례이고 가난한 학생이 부자로 성장하는 경로를 막는다. 수능 점수 경쟁은 단지 허수아비 게임이며 허상이다. 수능을 개혁할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수능이 공정하고 신분 상승을 이뤄준다는 허구를 깨고 대안을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

대안은 새로운 학교 건설을 위한 교육 개혁에서 시작된다. 학교교육과 대학입시가 두개의 톱니바퀴처럼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교육과정과 수능이, 학교교육과 대입제도가 서로 따로 돈다. 공정한 경쟁은 학교교육을 통해 '만들어가야 할 가치'다.

표준화 시험에 미뤄놓고 눈을 감아버리면 시험은 공정이라는 가치를 배반한다. 수능은 서울 학생에게 유리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환경을 가진 학생에게 유리하며 처음 치르는 재학생보다 여러 번 치른 N수생에게 유리하다. 이런 수능이 공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