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척결이 건설혁신인가

"단속·처벌만으로 불법 하도급 근절 안된다"

2023-05-19 11:02:09 게재

건설노동자 직접고용 않는 구조 … "지속가능한 건설업, 적정임금제·초기업교섭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1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노조 부패는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다"라고 말했다. 올해 2월 1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 관련 협회 및 공공기관 간담회'에서 "건설노조는 노조의 탈을 쓰고 돈을 뜯어가는 약탈집단이다. '가짜 약자'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건설노조를 건설산업 질서를 교란하는 부패집단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노동절인 1일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분신 사망했다.
11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국회에서 민·당·정협의회를 거쳐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월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다.
하지만 노동계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산업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고 구조적으로 해결할 방안도 내놓지 않으면서 건설노조만 때려잡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조탄압 중단 촉구, 거리로 나온 건설노조│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정부의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

노동절이었던 1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한 고 양회동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유서 일부다.


#. "불법 하도급이 있으면 불법 하도급 신고센터에 신고하면 된다." "오늘 아침에도 신고하고 왔다. 아무리 신고해도 조사를 나오지 않는다."

12일 민주노총 등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불법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현장 단속을 놓고 김상문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과 건설노동자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윤석열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규정하고 불법행위 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산업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고 구조적으로 해결할 방안도 내놓지 않으면서 건설노조만 때려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단속·처벌 강화만으로는 불법 하도급 근절이 어렵다"면서 지속가능한 건설업을 위해 '초기업 교섭' 확대와 '적정임금제' 실시를 제시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연맹과 건설노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달 14일과 20일, 이달 12일 국회에서 '건설산업 혁신,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연속토론회'를 3차례 열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일자리 = "정의로운 건설현장은 안전하고 질높은 일자리이며, 제대로 대접받는 삶이다. 그러려면 합당한 수익이 보장돼야 하고, 일하는 날이 보장돼야 한다."

신영철 건설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신 소장은 '한국건설문화의 현실과 과제-한국 건설산업 패러다임을 전환하자' 발제에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일자리인데 적정임금은 고사하고 툭하면 임금이 체불되고 있다"며 "노동자 고령화, 외국인노동자 불법고용, 하도급 구조 고착화 및 불법 재하도급 등이 한국 건설산업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 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 불법고용"이라며 "다단계 하청구조 탓에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건설현장에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합법적인 도급구조는 '발주처-종합건설사(원청)-전문건설업체(하청)'까지다. 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불법·편법을 동원해 도급팀장에게 불법 재하도급을 준다. 이 도급팀장이 인력시장에서 건설노동자를 직접 모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최저가입찰제'가 적용되니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공사대금이 줄어든다. 가장 밑바닥 단계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신 소장은 건설산업 정상화 방안으로 △직접시공제 정상화 △적정임금제 정착 △내국인노동자 고용 보장 △외국인노동자 고용 제한 등을 제시했다.

원청인 대한건설협회 한상준 기술안전실장은 "원청 직접시공이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직접시공을 전제로 적정공사비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청인 대한전문건설협회 김영현 정책본부장은 "하도급 경쟁이 심화되면서 저가수주를 하게 된다"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하도급 입찰 결과를 공개하거나 저가 하도급 심사규정을 도입하는 등 현실에 맞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우철 국토부 건설정책과장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원인일 수도 있고, 불법 외국인 채용이 문제일 수도 있고, 일자리 경쟁으로 인한 임금 하락이 문제일 수도 있다"며 "왜 이런 문제가 없어지지 않느냐를 생각해보면 감독 역할을 해야 하는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정부가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정임금제, '건설현장 정상화' 시작이자 인프라 = '모두의 제값 확보를 통한 건설산업 정상화 방안' 발제에서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최저가낙찰제가 생산능력이 없는 부실업체들이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며 "결국 부실업체가 수주해서 브로커처럼 다시 하도급을 주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심 전문위원은 "이런 하도급 구조가 되면 기본적으로 공사비가 부족한데, 현장 관리만 잘하면 된다, 감리만 잘하면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절대 불가능하다"며 건설노조 불법 단속에만 집중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최저가낙찰제가 원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공사비 단가삭감을 막아낼 억제장치가 없다는 게 핵심"이라며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려면 임금 하한선을 두는 '적정임금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비가 위에서 결정돼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식이 아니라 아래에서 가격이 결정돼 위로 올려보내는 상향식이 돼야 '저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적정임금(Prevailing wage) 제도'를 예로 들었다. 이 제도는 공공발주자가 적정임금을 공사원가에 반영한다. 입찰자는 공법개선을 통해 투입인력을 줄일 수는 있으나 노동자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 노동자에게 적정임금 이상을 지급하도록 했다.

◆개별 기업교섭으론 건설산업구조 못 바꿔 = 심 전문위원은 "미국은 적정임금제 도입 후 다단계 하도급을 억제해 재해건수 50% 감소, 사망재해 15% 감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적정임금제를 도입해 (건설현장) 직종별로 임금 하한선을 설정하면 불법 하도급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론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숙련도에 따라 적정 처우를 하는 '기능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설산업 정상화를 위한 정부 및 노사의 역할'이란 발제에서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건설현장에서 개별기업과 교섭하는 것으로는 전체 건설산업구조를 바꾸기 힘들다"며 "초기업 교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초기업 교섭을 통해 건설사들이 모인 건설협회 등에 일정 정도의 기술투자를 약속받아야 한다"면서 "아울러 임금을 결정하는 '시중노임단가' 산정에도 노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개별기업 뛰어넘는 교섭 필요"
"불법하도급의 본질은 고용 문제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한남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