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시 군경에 희생, 73년만에 진실규명

2023-05-26 11:08:08 게재

경북 예천·전남 화순 주민 수십명 집단 살해돼

인민군에 희생된 전북 임실 주민도 진실규명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부역혐의 판단" 논란

한국전쟁 당시 경북 예천지역 주민 10여명이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의 진실이 70여년만에 드러났다.

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경북 예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말에서 7월 중순경 경북 예천지역 주민 10여명이 국민보도연맹원 및 요시찰대상자라는 이유 등으로 예비검속돼 경찰서에 구금됐다가 예천읍 고평리 고평나들 등에서 경찰과 국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경북 예천지역 국민보도연맹원과 요시찰대상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천경찰서와 지서 경찰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통보를 받는 방식으로 예비검속돼 구금됐다가 예천경찰서가 후퇴하기 전 고평나들과 개포면 경진리 서울나들, 용궁면 산택리 원당고개에서 경찰과 군인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의 제적등본과 족보, 제4대 국회보고서, 1기 진실화해위원회 피해자 현황조사,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진실규명 대상자 10명을 이 사건의 희생자로 판단했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들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20~30대 남성이었다.

진실화해위는 특히 이번 조사과정에서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양민학살진상보고서'에서 확인된 '양민피살자신고서'를 활용했다. 예천 지역 '양민피살자신고서'는 총 183건으로 이번 진실규명 대상자 10명 중 8명의 기록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군인과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은 국민의 생명권 침해와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하고 국가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피해 및 명예회복 조치, 추모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1950년 10월부터 1951년 7월 사이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동면, 동복면, 북면에 거주하던 주민 34명이 군경의 수복작전 및 부역혐의자 색출과정에서 적법 절차 없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조사 결과 화순군 지역 수복과 빨치산 토벌작전에 투입된 제11사단, 제8사단 소속 국군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을 집합시켜 아무런 조사 없이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피란하는 민간인을 살해하고 국군의 소개 명령에 따라 이주한 주민을 연행한 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은신처에 숨어 있는 주민을 붙잡아 군장을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시킨 후 살해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화순 경찰은 지역 수복과 빨치산 토벌작전 과정에서 눈에 띈 젊은이들을 연행한 후 총살했으며 심지어 부역행위에 대해 자수하라는 경찰 명령에 따라 자수한 주민까지 법적 절차 없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1950년 9월부터 1951년 2월 사이 전북 임실군 주민 10명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의 진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희생자들은 우익단체 활동을 했거나 마을 이장, 경찰 가족, 빨치산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희생됐다. 특히 인민군 퇴각시기인 1950년 9월 27~28일 사이 임실군 관촌면과 삼계면을 중심으로 우익인사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 및 유족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희생자 추모사업 지원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72년 10월 계엄당시 '군경합동수사반 불법구금·고문 등 인권침해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경남 지역 공무원이던 A씨와 자영업에 종사하던 고 B씨, 고 C씨가 1972년 11월 경남지구군경합동수사반에 검거돼 육군보안사령부대로 연행, 구금된 사건이다. 이들은 함께 모여 도박을 함으로써 집회를 금지하는 계엄포고를 위반하고 같이 춤을 추는 등 자신과의 관계를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여성들을 위협해 간음했다는 협박죄로 1973년 1월 군법회의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3~2018년 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협박죄에 대해선 무죄가 아닌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이들은 당시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돼 고문을 당하며 '협박죄'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당시 합동수사반이 영장없이 검거·구금하고 고문을 가해 여성들을 협박했다는 진술을 받아냈으며 이를 통해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3.15의거 시위 참여 확인 사건'을 조사해 차 모씨 등 8명이 당시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으로 마산지역 8개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규명을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1988년 11월 집회현장에 있다가 전투경찰로부터 낭심을 가격당해 인공 고환 삽입 수술을 받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경찰병원이 수술 및 치료비용을 청구하지 않았지만 영구적 신체 상해에 대해 적절한 피해구제조치를 다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실질적인 피해회복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25일 조사개시 2주년을 맞아 연 기자간담회에서 "부역 혐의 희생자 중에 실제 부역자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좀 더 세밀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적법한 절차 없이 총살을 당한 희생자들에게 실제 부역 혐의가 있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으로 위원회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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