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함께 위험요인 해소

산업재해 줄이기, 안전문화 정착에 달렸다

2023-05-26 10:57:15 게재

'사고사망만인율' OECD 최하위권 … 민·관 손잡고 법·제도 한계 극복 추진

#. 지난 16일 3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주차장에는 퇴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 직원들이 몰렸다. 주차된 버스 외벽에 새로운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스티커에는 '노사가 함께 안전원팀,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라는 안전문화 슬로건이 인쇄됐다. 울산지역 안전문화 실천추진단과 현대차는 이날 통근버스 180대와 사내 운행버스 50대 등 총 230대의 차량에 스티커를 부착했다. 스티커는 연중 상시 버스 외벽에 부착돼 울산시내와 공장 곳곳을 누빈다. 이날 울산고용노동지청와 안전보건공단 울산지역본부 그리고 현대차는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협업식도 가졌다.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경시 풍조를 안전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전국 39개 지역에서 800여개 공공·민간부문의 다양한 기관들이 참여하는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이 안전 캠페인·결의대회·기획 행사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 등 노동당국이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문화 확산의 실효성 강화에 나섰다. 안전의식 변화 없이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과 제도만으로 중대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1만명 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사고사망만인율은 2001년 1.23에서 2021년 0.43으로 20년 동안 1/3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중대재해 규모는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 수준을 훨씬 웃돈다. 2021년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38개국 중 34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률은 영국의 1970년대, 독일과 일본의 1990년대 수준이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과 안전보건공단 울산지역본부, 현대자동차는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협업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전상헌 안전보건공단 울산본부장, 김준휘 고용부 울산지청장, 이동석 현대자동차 대표이사가 현대자동차 통근·사내 버스 외벽에 안전문화 슬로건을 부착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안전보건공단 제공


그동안 노동당국도 산업재해 예방에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2020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 등 꾸준히 산업재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사고사망만인율은 8년째 0.4~0.5 수준에서 정체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874명으로 2021년(828명) 대비 5.6%(46명) 늘었다.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2026년까지 사망사고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0.29)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안전문화 확산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안전을 당연한 가치로 인식하고 각자 역할과 권한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도록 해서 산업재해 예방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안전보건 주체의 참여와 혁신을 통해 안전문화 확산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국은 지방고용노동관서, 지방자치단체, 공단 등 공공기관과 지역별 노사단체, 업종별·직종별 협의회, 지역 언론사 등 민간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합동 협의·집행기구인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을 전국 39개 지역에 설치·운영 중이다.

기존 안전문화 확산 정책 대부분은 정부 중심의 일방적인 산재예방 메시지 전달에 그쳤다. 이번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은 민·관이 합동으로 협의·집행하는 기구로 상향식으로 산재예방 메시지를 개발하고 전파한다.

◆산업현장 밀착형 홍보활동 전개 =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안전보건공단은 우선 현장에 밀착하는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사업주와 노동자 등이 자연스럽게 안전문화 메시지에 노출될 수 있도록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을 고려한 주요 동선을 중심으로 홍보활동을 추진한다.

안전문화 메시지는 지역의 산업 특성이나 업종별 빈번한 사고유형 등을 고려해 특화된 메시지로 설정한다. 또 지역행사장에 안전문화 부스를 운영하고 지역 주요 업종 사업장과 안전문화 확산 협약을 맺는 등 지역사회 전반에 안전문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통근버스 등에 안전문구 스타커를 부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협업을 통해 근로자는 작업현장에서, 시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문화 메시지를 자주 접함으로써 안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관내 대기업 등과 협업해 울산지역 안전문화 조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문화 홍보는 일방적인 '주의' 의무를 강조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구로 눈길을 끌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사업장 화장실에는 '물은 내려도 안전은 내리지 마세요' 구내식당에는 '한국인은 밥심으로, 작업은 안심으로' '음식은 적당히, 안전은 충분히!' 작업현장에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안전'과 같은 문구가 사용된다.

시민 밀집지역의 경우, 카페와 음식점에는 '하루를 깨우는 커피, 안전을 깨우는 위험성 평가' '설탕은 줄이고, 안전은 더하고' 등의 문구가, 대중교통에는 '이 버스는 교통안전과 산업안전이 함께 달립니다'라는 문구가 부착된다.

기업·공공기관과 협력해 제품 등에도 안전문구를 삽입한다. 소주병에는 '술잔은 꺾어도 안전은 꺾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인쇄됐다. 우정사업본부와 협업으로 택배차량에는 '교통신호 준수 안전수칙 준수', 소포상자에는 '안전을 나르고 행복을 전하고', 포장테이프에는 '안전하게 받으셨나요? 이제 안전문화를 꽃피울 차례'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안전문화 활동 참여형 프로그램 확대 = 노동당국은 사업주 노동자 시민 등이 직접 안전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안전문화 퀴즈대회(대학생 외국인 등), 안전문화 우수사업장 영상 공모전, 산재예방 웹툰 공모전, 산재예방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은 소속 단체뿐 아니라 시민들도 참여해 자연스럽게 안전문화에 대한 관심과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안전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전문화는 안전보건 주체들의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정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각 지역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의 활동은 이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사가 함께하는 위험성 평가, 자기규율 책임의 시작"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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