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대입 교차지원
교육부 '문과침공' 보완책 효과 미지수
현 고2가 치르는 2025 대입 … 대학들 문·이과 칸막이 허문뒤 가산점 부여로 다시 장벽 높여
현 고2 학생이 치를 2025학년 대입의 입학전형시행계획이 4월 말 발표됐다. 주요 대학들이 정시에서 자연계열 모집 단위 지원 시 수능 선택 과목으로 수학에선 '미적분' 혹은 '기하'를, 탐구에서는 과학탐구를 지정했던 것과 달리 2025학년에는 이를 폐지하거나 변경했다. 전국 196개 대학 중 자연계열 지원시 수능 선택 과목에 제한을 두지 않는 대학이 2024학년에 비해 17개 늘어난 146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지원자들의 교차 지원 장벽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과목 지정이 완화되면서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 탐구에서 사회탐구를 선택해도 의대 진학의 길이 열렸다.자연계열이지만 중상위권 학생들은 자연계열의 과목 지정이 완화됐다는 소식에 경쟁이 치열한 과학탐구를 두과목 선택하느니 과학탐구와 사회탐구 한 과목씩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택 과목의 장벽이 진짜 낮아졌는지는 잘 들여다봐야 한다. 많은 대학이 수학과 탐구 지정 과목을 폐지했지만 가산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과목 미지정으로 계열 간 이동의 문턱이 낮아진 2025 정시,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그동안 주요 대학들은 의대 등 자연계열 학과에 지원하려는 수험생에게 수능 수학영역 선택과목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영역을 응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 때문에 수능을 치르는 상위권 수험생의 수학 '미적분' 선택을 조장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이 높은 수능 표준점수 등 성적으로 이과가 아닌 상위권 대학의 상경계열 학과 등에 교차 지원하는 '문과침공' 문제가 제기됐다.
결국 교육부까지 나서 교차지원 문제의 해결 방안을 요구했고 대학들은 자연계열의 과목 지정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을 2025 시행계획에 담았다. 고2 학생이 치를 2025학년 대입에 주요 대학들이 자연계열 지원 시 수능 지정 과목을 축소·폐지하면서 '확률과 통계'와 사회탐구 선택자도 자연계열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자연계열은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 또는 '기하', 탐구에서 과학탐구를 지정한 대학이 많아 '확률과 통계'와 사회탐구를 선택한 학생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선택 과목 가산점 영향력은 = 2025 시행계획에 따른 계열별 수능 수학·탐구 응시과목 지정 여부, 가산점과 영역별 반영 비율 등을 대학별로 살펴봤다. 표면적으로는 수학과 탐구 지정과목이 폐지되면서 인문계열 학생들이 자연계열로, 자연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로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수능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하든 원하는 계열로 지원이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의미가 크다. 문·이과 폐지로 표현되는 고교 교육과정과 수능이 충돌하는 구조가 형식적으로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택 과목에 따른 계열 간 지원 장벽이 낮아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산점이나 반영 비율 조정 등을 따져 보면 그 장벽이 여전히 높다.
대학들은 응시 조건을 낮췄다가 우수한 입학 자원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와 전공 기초 소양이 부족한 신입생들을 가르치기 버겁다는 교수진들의 반대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고육책으로 보인다.
2025 시행계획에서 수능 선택 과목과 관련한 대학별 대응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문계열은 수학과 탐구에서 과목을 지정하지 않지만 자연계열은 과목을 지정하는 경우,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에 각각 사탐과 과탐 가산점을 부여하는 경우, 수학이나 과탐에만 가산점을 주는 경우, 과목 지정이나 가산점이 없는 경우 등이다.
과목을 지정한 대표적인 대학이 고려대 서울대 홍익대다. 서울대 자연계열에 지원하려면 수학에서는 '미적분' 또는 '기하'를, 탐구는 과탐을 선택해야 한다. 홍익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고려대는 수학 지정 과목을 폐지했지만 자연계열은 과탐을 선택해야 지원할 수 있다.
경희대 서울시립대 연세대는 각 계열에 적합한 탐구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경희대는 과목당 4점을, 서울시립대는 사탐 2과목 선택시 3%의 가산점을, 연세대는 인문계열 지원자 중 사탐 응시 시 해당 과목 탐구 변환점수의 3% 가산점을 부여한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보통 정시에서는 1.5점 선에서 합격과 불합격이 나뉜다"며 "과목당 4점의 가산점은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진수환 강원 강릉명륜고 교사는 "인문계열 학생들은 수학이나 과학에 큰 부담을 느껴 자연계열 지원을 염두에 두는 경우도 드물다"며 "가산점 부여는 대학들이 교육부의 요구로 과목 지정을 풀기는 했지만 넘어오진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목 지정을 풀면서 '확률과 통계'와 사회탐구를 선택해도 의대에 지원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 수능에서 수학의 영향력은 국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5월 모의평가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학최고 표준점수가 162점이었지만 국어는 최고 표준점수가 137점으로 차이가 컸다.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의 최고 표준점수도 7점 차이가 났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사실 누가 가산점을 받아 유리한가가 아니라 대다수가 가산점을 받는 상황이라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수험생이 불리한 구조"라고 밝혔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 소장도 "가산점이 3%만 돼도 뒤집기가 쉽지 않다. 탐구가산점에 탐구 영역별 반영 비율을 곱하면 가산점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기회는 주지만 그 기회를 잡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한다.
◆영역별 반영 비율 차이 주목해야 = 2025 시행계획의 특징 중 하나는 대학들이 모집 단위를 세분화했다는 점이다. 인문은 인문계열과 사회계열로 구분하고, 자연계열도 모집 단위 특성에 따라 그룹을 나눠 반영 비율을 달리 설정했다. 경희대는 문과대학 외국어대학 생활과학대학(식품영양학과 제외) 한의예과(인문) 등을 인문계열로, 자율전공학부 정경대학 경영대학 국제대학 지리학과(인문) 등은 사회계열로 구분해 가산점이나 반영 비율에 차등을 뒀다. 인문계열은 국어 35% 수학 20% 탐구 30% 영어 15%를, 사회계열은 국어 30% 수학 30% 탐구 25% 영어 15%를 반영한다. 사회계열은 인문계열보다 수학 반영 비율이 10% 높고 국어 비율은 5% 낮다. 참고로 자연계열은 국어 20% 수학 35% 탐구 30% 영어 15%를 반영한다.
중앙대도 인문대와 사범대는 국어 35% 수학 30% 탐구 35%를, 사회과학대와 경영경제대, 간호학과(인문)는 국어 30% 수학 40% 탐구 30%를, 자연 계열은 국어 30% 수학 35% 탐구 35%를 반영한다.
이 소장은 "경영·경제학과가 포함된 사회과학 계열은 수학 반영 비율을 높게 책정했다"며 "가산점 부여도 순수 인문계열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과학계열은 수학에 강점이 있는 수험생의 지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한다.
◆계열 구분에서 선발 방식 변화 = 2025 시행계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두 대학은 건국대와 성균관대이다. 성균관대는 성적 환산 방식을 A유형과 B유형 중 환산 시 상위 점수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권영신 성균관대 책임입학사정관은 "인문과 자연계열로 모집 단위를 구분하되, 2가지 유형으로 영역별 반영 비율을 제시했다"며 "학생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유형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대학이 환산해 높은 점수를 반영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인문계열 학생 중에서도 수학에 강점이 있는 학생이 있고 국어나 탐구에 강점이 있는 학생도 있다. 특정 영역의 성적이 낮아도 다른 영역에서 강점이 있을 수 있기에 다양하게 선발하고자 반영 비율을 이원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은 "수능에서 한 영역씩은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형을 이원화하면 지원자 풀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교차지원 대책을 마련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충족하면서 지원자 풀을 확대해 대학의 실리도 챙기는 인상"이라고 해석했다.
건국대는 모집 단위를 인문·자연으로 구분하지 않고 언어 중심과 수리 중심으로 구분하고 영역별 반영 비율을 달리했다. 정 교사는 "불필요한 교차지원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고 해석했다. 언어 중심 모집 단위는 국어 40% 수학30% 탐구 20% 영어 10%를, 수리 중심 모집 단위는 국어 30% 수학 40% 탐구 20% 영어 10%를 반영한다. 수학이나 탐구에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아도 수리 중심 모집 단위에는 수학에 강점이 있는 학생들의 지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