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입법문화' 바꿀까
21명 전문가, 의견수렴부터 사후영향까지 8단계 정성평가
의원마다 법률반영 법안 1~2건 추천, 검증 … 방대한 자료 심사
평가위원, 의장단·교섭단체 추천 … 수상자, 정당별 배분 관행
의원 3분의 1정도만 참여 … "객관성·독립성 위해 당파성 탈피해야"
쏟아지는 법률로 부실입법, 과잉입법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입법문화를 '양'에서 '질'로 전환시키려는 두 국회의장의 노력이 기대만큼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1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1대 국회 전반기에 박병석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을 만들었고 후반기에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를 '입법 노벨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한다. 박 의장은 2021년 1회 의정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국회'와 '성숙한 의회정치'의 실현을 추진하고자 했다"며 "의정대상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우수 법률안을 발의한 의원을 "국민들에 널리 알리고 국회의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고도 했다. 지난해엔 "이제 21대 전반기 국회가 목표로 삼았던 '일하는 국회'와 '성숙한 의회정치'가 대한민국 국회의 일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김 의장은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을 계기로 여전히 법안의 질보다는 발의건수 등 양을 평가하는 관행을 개선하여 입법활동에 대한 질적 평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국회가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쏟아지는 법안, 떨어지는 통과율 = 국회의원들의 입법 발의 드라이브엔 브레이크가 없다. 반면 법률안의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인 2020년 5월 30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3년 동안 의원들은 모두 2만160개의 법안을 내놓았다. 이중 원안, 수정안 또는 대안반영 형식으로 통과 법안에 반영된 것은 4938건이었다. 통과율이 발의 법안의 24.5%에 그쳤다.
법안의 통과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7대에는 5728개의 의원발의 법안 중 39.0%인 2232개가 법률에 반영됐고 18대엔 1만1191개 중 34.5%인 3866개, 19대엔 1만5444개 중 34.6%인 5346개가 사실상 통과됐다. 20대엔 2만1594개 발의 법안 중에 30.6%인 6608개만 법률안에 반영돼 본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법안 발의는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법률안에 반영되지 않고 폐기되는 법안이 수두룩한 셈이다.
통과된 법안 중에서도 '통과 법안 수'를 늘려 입법성과를 내려는 '실적용 입법'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사회 이슈가 되는 법안을 논의하려고 하면 법안 내용을 조금씩 바꿔서 내놓고는 다른 법안과 함께 곧바로 법안소위에 직회부, 위원회 대안에 반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런 방식은 사실상 어렵게 법안을 준비해 낸 의원 입장에서는 도둑맞은 느낌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법은 문구 하나하나가 중요한 만큼 사후 영향까지 고려해 신중하게 발의해야 한다"며 "통과된 법이라고 같은 무게의 법이 아닌 만큼 충실하게 준비된 법안들을 찾아내고 그렇지 않은 부실 법안을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이 아닌 '질' =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은 '양'이 아닌 '질'을 따지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300명의 의원들은 1년동안 내놓은 법안 중에서 1~2개를 제출할 수 있다. 계류돼 있으면 안된다. 법률로 반영된 법안이어야 한다.
4개 부문을 점검한다. △법률안 성안과정 △협력적 입법 △법제적 완성도 △정책효과 및 비용 등이다. 준비단계부터 법안심사 과정, 실제 영향까지 따져보는 셈이다. 배점(100점 만점)을 보면 성안과정(25점)과 법제적 완성도(15점) 못지않게 사후 정책효과와 비용(40점)에도 높은 비중을 뒀다.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조경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방대한 분량을 심사하는 데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평가"라며 "입법준비단계부터 사후 영향까지 짚어가면서 정성평가를 통해 질적인 부분을 점검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객관성, 공정성 등에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심의위는 모두 대학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되는데 의장단과 정당 추천절차를 거친다.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평가를 담당하는 심의위원은 △국회의장 및 국회의장이 지명하는 부의장이 추천하는 사람 7명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 7명 △그 외 교섭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 7명 등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회는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수상자 선정 심의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실제 '독립성' '자율성' '중립성'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심의위에 참여했던 모 교수는 "국회의 대부분 조직들이 교섭단체 등 정당 추천으로 배분하는 게 관례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뒷말 없이 오히려 중립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런 방식 자체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당파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법안에 대한 '질적 평가'라는 것이 가능한지 등 근본적인 질문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입법 과잉시대에 '양'보다는 '질'로 가야 한다는 일종의 문화형성의 과정으로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앞의 조 교수는 "첫 회의때부터 수상자를 정당별로 몇 명으로 할지 위원들끼리 합의를 했다"며 "의석수 등을 반영했다"고 했다.
의원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도 과제다. 1회 의정대상에는 국회의원 100명이 170건의 법안을 제출했고 2회땐 145명이 260건, 3회땐 107명이 159건을 냈다. 의원 300명 중 3분의 1 수준인 100명 정도가 참여한 셈이다. 의원실 스스로 방대한 자료를 챙겨야 한다는 점, 다른 입법상에 비해 위상이 독보적이지 않다는 점 등이 참여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진표 의장은 전날 75회 국회 개원식 기념사를 통해 "의원입법이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발의건수가 급증하면서 과잉규제나 부실입법 등 법률안의 질적 수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은 정책연구부문에서 의원연구단체를 선정하고 우수위원회도 뽑고 있다. 올해는 의장단에 의해 여야협치부문도 수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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