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또 현장조사, 공정위에 무슨 일이?
손해보험사 등 5월에만 적어도 6건 현장조사 착수
조사-정책 조직 분리 효과 … "실적으로 승부해야"
개편논의 중 현장조사 못나가 "밀린 숙제하다보니"
공정위는 현장조사 착수 소식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확정되지 않은 기업의 혐의를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규정 때문이다.
1일 공정위에 따르면 현장조사 착수 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4~5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실제 공정위가 올해 초 자사우대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한 카카오모빌리티 사건도 신고접수 3년 만에 결론을 냈다. 이 때문에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한 언론보도는 업계 소식통을 빌어 많아야 한두 달에 한 건 정도 수준이었다. 더구나 5월 이전 약 3개월 간은 아예 현장조사 소식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편 앞두고 주요결정 미뤄 = 사정을 알아보니 조직개편 영향이 컸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촉발된 공정위 조직개편은 지난 4월14일 단행됐다. 조사와 정책 부서를 분리하고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미 올해 초부터 내부에선 조직개편이 예고됐다. 3월초쯤부터는 아예 조직개편 인사조직도까지 나돌았다. 원활한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사전 희망부서를 접수했고, 일부 국과장에겐 조직개편 연착륙을 위해 발령예정 부서를 비공식 통보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조사 등 주요 정책판단은 조직개편 이후로 미뤄졌다는 것이다. 곧 후임자가 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떠날 사람이 주요사건 결정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이후 3개월간 이렇다 할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최근 현장조사가 갑자기 많아진 배경에 '밀어내기'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3개월여 밀린 사건을 개편 이후 시작하다보니, 5월에 조사착수 사건이 몰렸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없을까 = 공정위 한편에선 조직개편의 긍정적 효과로 풀이하기도 했다. 다른 관계자는 "조직개편 이전에는 조사와 정책을 병행하다 보니 과장급 이상은 국회나 토론회 참석 등 주로 정책업무를 맡고 사무관이 조사를 도맡았다"면서 "조직개편 이후 조사부서 국과장들이 정무적 판단을 하면서 직접 뛸 수 있어 조사환경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조사부서 특성상 '사건의 갯수와 질'이 인사고과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한 국장급 인사는 "조사부서는 결국 실적으로 승부가 난다는 점을 직원들이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적으로 '좋은 사건'을 연구하고 다소 애매한 사건도 적극 들여다보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부작용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적 경쟁이 과열되면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에까지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또 5월에 이뤄진 현장조사는 전수조사가 없었다. 과거에는 모든 업체에 현장조사 인력을 동시에 보냈다. 조사 효율성과 비밀유지를 위해서다. 하지만 5월 현장조사는 업계 대표업체만 현장조사를 보내거나, 상중하 표본을 뽑아 2~3곳에만 조사인력을 보냈다. 조사가 집중되다보니 가용인력이 부족해서다. 이때문에 밀어내기식 현장조사가 무혐의를 남발하는 '면죄부 조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20일간 현장조사만 6건 =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5월9일 이후 20일 남짓 만에 최소 6건의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9일에는 보험금 지급 거부 담합 의혹과 관련해 손해보험사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가 금융 상품 관련 담합으로 손보업계를 들여다 본 것은 2016년 자동차 보험료 담합 의혹 이후 7년3개월 만이다. 공정위는 이날 손해보험협회와 현대해상·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흥국화재 등 주요 손보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백내장 관련 보험금 지급 거부 과정에서 손보사들이 담합했는지 여부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주일 뒤인 16일에는 철강와이어 업체의 입찰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이날 고려제강과 만호제강, DSR 등 주요 철강 와이어 제조업체에 대해 현장조사를 했다. . 공정위는 최근 이들 3개사가 담합을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공정위는 조달청이 2012~2018년 발주한 철근 입찰에서 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11개 사에 256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하루에 2건 동시착수도 = 닷새 뒤인 22일에는 CU 등 편의점업계를 현장조사했다. 공정위는 편의점 업계의 공정 거래 준수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운영사인 BGF리테일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CU는 점포수 기준 편의점 업계 1위다. 나머지 시장은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과 GS25(GS리테일), 이마트24 등이 독과점을 구성하고 있다. 한편 BGF리테일은 조사착수 직후 사내 익명 게시판을 폐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튿날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이날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서울 남부지부 송파구 지회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협회가 중개사들에게 시도별 요율 상한에 맞춰 수수료를 받도록 강요했는지 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5월 마지막날인 31일에는 두 건의 현장조사가 동시에 이뤄졌다.
공정위는 아프로파이낸셜대부 등 OK금융그룹 계열사 여러 곳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OK금융그룹의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OK금융그룹은 대부업 시장에서 철수하기 위해 '러시앤캐시'를 운영하는 아프로파이낸셜대부의 사업 관련 자산·부채를 OK저축은행에 넘기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날 공정위는 오스템임플란트를 비롯한 임플란트 제품 업체들의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임플란트 업체들이 치과의사들의 과도한 반품을 막기 위해 반품 비율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