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쏠림 공대경쟁률

상위권 의대 쏠림에 공대 문 넓어진다

2023-06-07 11:15:52 게재

서울대 공대 위에 의학계열 … 최상위권 이탈로 서울대·연고대 공대 합격선 변화

몇년 전에 비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른바 SKY 공대 합격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고교교사들은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다"라고 답했다. 지역과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최상위권 공대에 반에서 한 명 정도는 더 합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SKY 공대 입시를 논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의 지원 패턴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 몇십년 동안 입시 생태계의 꼭대기에 있는 의대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2022학년부터 학부 선발이 재개된 약대도 이 흐름을 강화했다.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의약학 계열은 SKY 공대의 합격선을 얼마나 끌어내렸을까. SKY 공대 진학이 수월해진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입시를 둘러싼 이런 상황이 공대 지망생들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

사진 이미지투데이


# "고교를 졸업한 지 8년이 지난 제자가 찾아왔다. 연세대 공대 졸업반인데 회계사를 준비해야 하나, 로스쿨을 가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2~3년을 준비해야 하고 자격증을 따면 또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며 다시 공부하면 의대를 갈 수 있을지 상담하러 온 것이다. 결국 그 학생은 수능을 다시 보고 서울 주요 대학 의예과에 합격했다."

교사들은 고교 현장에서 불고 있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학계열 쏠림 현상을 위와 같이 전했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학계열 선호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의대 열풍을 다시 짚는 이유는 의학계열이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예전에는 공대 적성의 학생이 의대를 갈 성적이더라도 공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간혹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의학계열을 향한 높은 선호는 합격선을 갈수록 끌어올린다.

◆상위권 학생들, 의대 준비는 기본 = 2024학년 의약학계열 모집인원은 6614명이다. 이 중 절반을 차지하는 의대의 전체 모집인원은 3016명으로 수시에서 1872명, 정시에서 1144명을 선발한다. 치의예과 631명, 한의예과 725명, 수의예과 497명, 2022학년 학부 선발을 재개한 약학대학은 1745명을 선발한다.

의약학계열의 모집인원이 많을수록 연쇄 이동으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합격선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현 서울 목동고 교사는 "인문계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부터 채워지지만 자연계는 의대 치대 약대 한의대가 채워지고 약대 한의대 합격권인 학생 중 일부가 서울대 공대를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합격선은 서울대 공대 위에 의학계열이 있고 약학과는 서울대 공대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선에서 형성된다. 위로 많이 빠져나가니 고려대 연세대 공대에 합격하기가 이전보다 수월해진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대입정보 포털 '어디가'에서는 이런 결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2022학년 서울대 의예과의 최종 등록자 상위 70%의 백분위 점수는 99.17이었고 연세대 의예과는 99.25, 치의예과는 98.25, 고려대 의과대학은 97.97로 각 대학의 자연계열 모집단위 중 가장 높았다. 또 성균관대 의예과는 99.0, 중앙대 의학부는 98.30으로 정시 배치표상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백분위 평균 합격선(상위 70% 컷)으로 대학별 정시입시 결과를 분석한 종로학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전국 의대 정시 합격선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자연계 정시 합격선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3개 대학 자연계 평균 합격선이 2020학년 95.0, 2021학년 94.6, 2022학년 94.4였고 같은 기간 의대는 각 97.4, 97.4, 97.9였다. 의대 합격선은 갈수록 올라가고 SKY 자연계 합격선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과 쏠림 현상, 의학계열 상위권 쏠림 등으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및 주요 대학의 인문과 자연계열 모두 정시 합격선은 낮아지는 양상이다. 2024학년 입시에도 이러한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약대 학부 2000명 선발 파장 = 2022학년 약대의 학부 선발 재개는 자연계 최상위권 사이에서 큰 관심사였다. 2011년 이전 학부에서 선발할 당시에도 높은 합격선을 보였는데 다시 학부 선발이 재개되면서 합격선이 어느 정도에서 형성될지 관심이 집중됐다. 2022학년 약대 선발인원은 1951명이었고 이는 웬만한 사립대 정시모집 인원과 맞먹을 정도로 많았다.

2022학년 입시 결과를 살펴보니 서울의 주요 약대는 고려대 연세대 공대 이상의 합격선을 보였지만 지방 약대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 공대 합격선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학년 성균관대 약학과의 최종 등록자 상위 70%의 백분위는 96.83, 중앙대 약학부는 95.80, 한양대(ERICA)는 96.33, 이화여대 약학전공은 95.67을 기록했지만 지방에 위치한 목포대 약학과는 84.50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박윤근 교사는 "약대 합격선은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수도권 주요 약대는 고려대 연세대 공대와 비교해 합격선이 높다"며 "연세대 공대와 약대에 동시 합격하면 약대를 가는 학생이 많아서 약대에서 2000명 가까이 선발하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빠져나가 SKY 공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2000명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고는 2021년 기준으로 1616개다. 각 학교에서 한 명 이상은 더 SKY 공대에 진학할 수 있다.

◆합격선 높은 계약학과의 등장 = 수능 응시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에도 자연계열 학과 정원은 꾸준히 증가했다.

대표적인 예가 계약학과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에 채용이 보장되는 반도체학과에서 선발하는 인원만 해도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과학기술원 포항공대 등 10개 대학에서 500명이 넘는다. 모집인원도 조금씩 늘어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50명이던 정원을 2024학년부터 100명으로 확대 선발한다.

여기에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LG디스플레이)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삼성전자) 스마트모빌리티학부(현대자동차)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삼성전자) 경북대 모바일공학 전공(삼성전자) 등 채용형 계약학과가 개설되고 있다.

최상위권 대학 계약학과의 정시 합격선은 대체로 의치대보다 낮지만 수도권 약대와 비슷하고 고려대 연세대의 일반 공대보다 높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2022학년 최종 등록자 상위 70%의 백분위는 96.47로 공대 학과 중 가장 높았다. 다만 연세대의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94.25로 다른 공대 학과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높은 충원율로 최종 합격선이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95.83으로 의예과와 약학과 다음으로 높았다.

계약학과는 대개 충원율이 높다. 연세대 입학처에서 발표한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의 2023학년 충원율은 수시와 정시를 합해 각각 260.0%, 125.8%로 다른 학과보다 높았다.

박성현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사 약사 등 면허증이 있는 전문직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높다"며 "고려대 연세대의 반도체 관련 학과에 합격하고도 가지 않는 학생들은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수도권 의대에 합격하기는 어렵고 대학을 좀 낮춰 치대 한의대 약대 등으로 옮겨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첨단 학과 증원의 여파 = 첨단 분야 학과에서도 정원이 늘어난다. 지난 4월 교육부는 산업 수요 확대에 따라 첨단학과 모집인원을 늘린다고 발표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세 대학에서만 298명이 증원될 예정이다. 서울대는 2024학년부터 첨단융합학부의 차세대지능형반도체 전공 등 4개 전공에서 218명을 선발한다.

고려대는 전기전자공학부에서 56명, 연세대는 인공지능학과에서 24명이 증원된다. SKY 공대를 지원하려는 학생은 서울대의 첨단학과 인원을 주목해야 한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학부모들은 서울대에 첨단 학과가 생겼으니 공대 다른 학과의 성적이 낮아질 가능성이 보인다"고 전망했다. 임 대표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 증원하는 298명은 자연계 최상위권 합격선에 영향을 줄 규모다. 그 밖에 서울권 대학에서 전체 667명을 더 증원함으로써 최상위권, 상위권 대학의 합격점수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기수 기자 · 조진경 내일교육 리포터 jinjing87@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