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비핵화를 염원할 수 없는 이유
2023년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워싱턴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는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를 한미 양국의 공동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은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가 한국의 목표일 수는 있지만 미국의 목표일 수 있는가라는 부분일 것이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미국과 북한의 정의가 상이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것을 북한 비핵화로 국한시키는 반면,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해주는 핵우산 제거, 한미동맹 해체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후자의 의미에서의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전자의 의미에서의 비핵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지만 중국 일본 및 러시아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린스턴대학의 리온 시걸(Leon Sigal) 교수가 저술한 '이방인 무장해제(Disarming Strangers)'란 북한핵 관련 책을 보면 1993년 당시 미국의 육군·해군·공군 참모총장들은 북한 비핵화가 미국 입장에서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 비핵화가 무력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이익이 아니란 의미일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북한 비핵화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이익일 것이다. 이는 북한 비핵화가 미국과 한국의 공동 목표가 아닐 가능성을 암시해주는 주요 사례다.
북한 비핵화를 바라지 않는 듯한 미국
이외에도 미국의 여러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결코 원할 수 없는 입장이었음을 암시한 바 있다.
예를 들면 '기로에 선 대한민국(South Korea at the Crossroad)'이란 제목의 책에서 미 외교협회 연구원 스콧 스나이더(Scott A. Snyder)는 미중 패권경쟁 대비 등의 이유로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미국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향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보장해줄 수단은 결국 북한 핵무장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또한 이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난징대학의 주펑(朱峰)은 2011년 '이스트 아시아(East Asia)'라는 잡지에 "중국은 '미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자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중국을 포위할 필요가 있는데 진정 북한 비핵화를 원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간파한 결과일 것이지만 노무현 대통령 또한 미국의 북한 비핵화 의지에 의문을 품었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책을 보면 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것 같은데 이처럼 해서야 한미관계가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면서 "미국 내 일부 세력은 한반도의 긴장과 대립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염원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은 북한 비핵화가 아태지역 질서를 요동치게 만들 수 있는 성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가 통일되면 주한미군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가능성을 심각히 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 비핵화 이후 주한미군이 압록강 부근으로 올라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소 염두에 둬야
여기에서 보듯이 미국과 중국 모두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입지와 관련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이들 국가가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상대적 영향력을 미중 패권경쟁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상대적 영향력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보이는 북한 비핵화를 이들 국가가 어떻게 염원할 수 있겠는가.
진보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한국인들은 주변국, 특히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염원한다는 가정 아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추구해온 듯하다. 그런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진정 북한 비핵화를 원한다면 미국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이 북한 비핵화를 결코 원할 수 없는 입장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