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김주애 후계자설' 뒤집어 보기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의 김주애 후계자설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들 주장의 근거는 김주애에 대한 '극존칭 사용' '기념우표 등장' '전용 백마 등장' 등이 사실상 전부다. 최근엔 김정은 베른 유학 시절 친구인 미카에로가 장남 존재를 들은 바 없다는 내용까지 추가했다.
그러나 극존칭 사용은 김씨 일가 로열패밀리에 대한 존경심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쓸 수 있다. 기념우표 역시 정확히 말하면 김주애 우표가 아니다. 화성-17형 성공이 주제고 거기에 김정은과 김주애가 일정하게 배치된 구도다.
전용 백마 역시 김정은 일가뿐만 아니라 측근 그룹에게도 주어지는 선물이란 점이다. 2019년 김정은 백두산 군마 등정 당시 김여정뿐만 아니라 조용원과 같은 측근들 역시 모두 백마를 탔다. 김정은은 측근 선물용으로 러시아산 백마를 대거 수입해왔다.
유학 시절 친구의 인터뷰 내용도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냥 딸을 낳았다는 얘기만 들은 것뿐이다. 장남 부재설이나 김주애 후계설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말이다. 그렇다면 근거가 미약한데 왜 '후계자설'을 주장하는 것일까?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종종 정보영역과 분석영역, 전망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김정은 자녀와 같은 초기밀사항은 국내외 관련 정보기관의 내밀한 정보수집의 영역이다. 김주애는 지난 해 말 등장해 고작해야 6개 정도 몇몇 공개활동에 모습을 비춘 것이 전부다. 분석할만한 텍스트가 매우 빈약하다.
그렇다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분석대상으로부터 반복적 패턴 신호 기호 맥락 의미체계 일관성을 확인할 때까지 일정한 텍스트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 축적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거쳐 향후 행보에 대한 전망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남성중심적 군사문화를 근간으로 한 체제
상식적인 전문가라면 김주애 등장 사진과 영상의 도상학적 분석을 통해 북한이 얻고자 한 효과, 대내외 메시지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계자 프레임을 전제하고 들여다보는 순간 지극히 평범한 상식, 분석의 기본을 놓치거나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무시하게 된다.
북한체제 75년 역사에서 후계구도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진행돼 왔다. 결정적인 것은 여건 성숙이다. 자칫 무르익지 않은 여건에 급하게 노출했을 때 후계구도의 취약점이나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후계 문제는 최고권력의 문제일뿐 아니라 권력엘리트의 기득권, 북한체제의 존립 문제다. 기존 3대 세습 과정은 철저한 비공개와 조직적인 사전 준비, 내부 학습과 선전 등을 통해 치밀하게 진행됐다. 공식적으로 후계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시점은 내부적인 후계 지명과정이 끝난 이후 공식 직함이 부여되면서였다.
김주애 후계자설 프레임은 북한체제 성립과 유지의 근원적 차원, 정치문화에서 김주애가 정치적 설득력을 갖느냐의 문제다. 북한은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을 둔 남성중심적 군사문화 속에서 성립되었고 그것을 근간으로 유지되어 온 체제다. 육·해·공에 전략군까지 110만명 조선인민군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의 권위와 정통성은 수령이라는 남성 중심적 혁명역사와 직결돼 있다. 여기에 핵무기에 대한 최종 지휘통제의 지위도 있다.
김정은은 후계 학습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군 경력이 많지 않아 군에 대한 장악에 많은 시간과 공, 거칠고 잔인한 숙청의 시간을 보냈다. 군은 만만한 집단이 아니다. 그들을 통솔하기 위해선 그들을 장악할 수 있는 압도적 권위와 잔인할 정도의 권력 행사가 필요하다. 또한 지도자의 능력안에는 군사 경험이나 군사 전통과 연결된 상징적 코드가 내재돼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10여살의 나이에 아버지 볼을 만지며 등장한 김주애로부터 군 통수권자로서의 위상과 후계자로 기획된 이미지를 발견하긴 어렵다.
여성수령 내세우려면 엄청난 에너지 필요
북한식 남성중심적 수령제 사회, 남성중심적 지배질서에서 여성지도자, 여성수령을 내세운다는 것은 장기간의 엄청난 정치적·사회적 에너지의 소비를 요한다. 가뜩이나 대외적 조건이 엄혹한 상황에서 자칫 기득권을 누리는 엘리트 그룹의 동요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달리 지방을 전전하거나 유학을 통해 성장했다. 정상적인 후계 교육과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 경험에서 본다면, 2010년에 태어난 장남은 철저한 관리 속에 후계학습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북한의 텍스트를 보다 두텁게 과학적이고 객관적 분석을 통해 추적해 나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