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전편 5
기후재난 대응 위해 물에도 순환경제 개념 강화
도심 내 물·에너지 유기적인 순환 강화로 저탄소화까지 … 지방하천 관리 강화 법안은 여전히 국회 계류중
"홍수 가뭄 등 관련 대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얘기는 그동안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상기후가 심화할수록 물 관련 문제는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사실 대책은 이미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집행이 중요한 상황에서 전문영역의 연계성을 강화하지 못하면 큰 성과를 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22일 윤주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한국물환경학회장, 물환경연맹(WEF) 한국위원회의장 등을 역임, 물 분야 권위자인 그는 "급할수록 기본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정부는 '제3차 국가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 2020년 12월 수립한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2021~2025)'을 강화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기후재난이 증가할 거라는 새로운 전망을 내놓는 등 심화하는 기후위기 상황을 대응하기에 종전 대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09℃ 올랐다. 또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온도인 1.5℃까지 상승 시점이 10년 이상 앞당겨질 전망이다.
◆"수질과 수량, 화학적 통합 강화해야" = 이번 대책에는 △기후 감시·예측 시스템 과학화 △미래 기후위험을 반영한 사회 인프라 개선 △기후재난 취약계층 피해 최소화 등을 골자로 전분야에 걸쳐 다양한 실행계획을 담았다. 지난해 서울·경기지역에 관측 이래 24시간 지속 최다 강수량인 435.0mm 폭우로 인한 침수 및 인명피해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물 관련 대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사실상 나올 수 있는 대책은 다 나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책만을 위한 대책으로 남지 않도록 고민해야 할 지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윤 교수는 "통합물관리가 이뤄진 지 4년이 넘었지만 행정적으로 수질과 수량 분야가 물리적인 결합을 넘어서서 화학적인 통합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내기 전에 어렵게 일궈낸 통합물관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합물관리는 분절된 물 관리체계를 하나로 합친 것이다. 두 부처에서 나눠 담당하던 수량 수질 재해관리 등 물 관련 업무를 한 부처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2018년 대부분의 물관리 기능이 환경부로 일원화되고 지난해 하천관리 기능까지 이관되면서 물관리 일원화가 완성됐다.
물론 환경부는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 추진을 통한 수량 수질 재해 등 물관리 전분야 총괄 등 통합물관리 정책 추진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자치단체 탄소중립지원센터장은 24일 "도시 거주율이 높은 우리나라 인구 특성을 고려할 때 도시를 위한 적응정책이 수해 방지와 취약계층을 위한 공정전환 사업 정도로밖에 언급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며 "도심의 열섬현상과 대기질 문제, 오폐수 처리 등 1, 2차 계획 기간이 종료된 시점에서 해결해야 될 적응 관련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은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 관점에서 계획돼야 하는데 이번 적응 계획은 단기 처방 위주에 치우쳐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 대한 언급이 미흡하다"고 덧붙였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2021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지난 100년 사이에 전세계 물 사용량이 6배 증가, 2050년까지 물 수요가 20~30%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물관리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류에 있는 댐에 저장된 물을 도시에 공급하고 사용한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는 식의 물관리로는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자연적인 기능을 이용해 도시의 물 순환을 촉진하고 물 재이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하수처리수 등 비전통적 수자원 활용 늘려야 = 26일 한국환경연구원(KEI)의 '뉴노멀 사회의 기후탄력 물 순환이용 도시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내·외부의 변화 요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시 물관리 체계가 지속가능하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도시에서 물과 에너지가 순환되며 하수처리수와 같은 비전통적 수자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 '물 순환이용 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관리 역시 순환경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은 지구 대기권 내에서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재생가능한 자원이지만 그동안 순환경제 논의에서 배제된 게 사실이다. 순환경제 개념을 물관리에 적용하면 △물의 자연적 순환 복원 △물이용 효율 제고 △경제 성장과 물 사용량 및 수질오염 증가의 탈동조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물관리 담론은 '하나의 물'(One Water) 개념으로 모아진다. 지표수 지하수 강우유출수는 물론 통합물관리 대상을 △하수처리수 재이용 △해수담수화 △단지 차원의 물 순환 등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이렇게 되면 하수와 유기성 폐기물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회수해 물 관리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전지구적으로 에너지의 60~80%가 도시에서 소비되므로 도시의 저탄소화는 탄소중립 필수조건이다. 때문에 물 순환이용 도시를 만들면 탄소감축은 물론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도 물관리 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사실 '물 순환 이용 도시'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언급돼왔지만 실제 적용되는 속도는 더딘 게 현실이다. 그만큼 집행력 강화가 중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환경부는 이번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통해 △물 순환 목표관리제 추진 △영향개발(LID) 기법 확대 적용으로 가뭄 및 도시침수 예방, 수질개선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시 물 순환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수질 수량 수재해 등 물 순환 전분야를 연계한 '물 순환 촉진' 지원 근거 및 제도 정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담수생물 서식 적합성 영향평가를 위한 수량 수질 수생태계 통합 모델을 적용할 방침이다.
◆지방하천 제방정비 완료 구간 48.1%에 불과 = 하지만 중요한 건 계획이 아니라 실제 집행이다. 이번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에서 소하천 범람 대비 설계빈도를 100년에서 200년으로 상향하고 대심도터널 지하방수로 강변저류지 등 적응기반 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하천관리 강화는 기본이다. 전국 하천의 87.9%인 지방하천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하지만 '하천법 일부개정법률안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방하천의 경우 재정 및 인력부족으로 인해 제방정비 완료 구간이 48.1%(국가하천은 81.4%), 하천기본계획 수립률은 86.3%(국가하천은 99.4%)에 불과하다.
최근 기후변화 영향으로 국지적인 집중호우 발생이 많아 국가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방하천 및 도심지 하천에서 홍수피해 규모가 증가해 홍수피해 우려지역에 대한 예방 및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1년 '하천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광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에는 △지방하천 중 국가하천 및 댐과 직접 연결돼 국가하천의 홍수량에 영향을 주거나 국가하천의 홍수위에 영향을 받는 하천, 도심지를 통과해 홍수피해를 받는 인구가 많은 하천을 국가지원 지방하천으로 지정 △국가지원 지방하천의 하천기본계획 수립을 국가에서 시행하고 국가지원 지방하천 관리(공사 및 유지보수)를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한 근거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다.
[관련기사]
▶ 호우경보 '관심'에서 '주의' 격상
▶ 물웅덩이 통과할 땐 1~2단 기어로 한번에
▶ 전국 장마철 돌입 … 좁은 구역 집중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