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열풍 자퇴 증가

'정시 올인' 하려고 학교도 그만둔다

2023-06-28 12:04:29 게재

상위권 학생들 '전략적 자퇴' 증가 … 자퇴생 겨냥한 사교육업체 마케팅도 한몫

학교 밖을 선택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전체 수능 지원자는 매년 줄고있지만 검정고시 출신 지원자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1000명 이상 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예전에 자퇴는 학교 또는 학업에 적응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자퇴는 좀 더 높은 성적, 좀 더 좋은 입시 결과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자퇴 열풍,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요즘 고교생의 자퇴 상황을 짚어봤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교육부가 내놓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이 '공교육 살리기'라는 목적과 달리 학교수업을 파행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2025년부터 전면 도입하기로 한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 평가 체계에도 다소 변화가 있다. 현재 9등급 상대평가가 적용되는 일반선택 과목이 성취평가(절대평가)로 전환된다.

반면 1학년 때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은 9등급 상대평가가 유지된다. 대입 전형을 위한 조치인데, 이렇게 되면 고1 때 내신 성적을 이유로 자퇴하거나 다른 학교로 재입학을 시도하는 학생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학교를 포기하는 자퇴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시 확대 후 자퇴 고민 늘어 = 이런 현상을 추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수능 응시생 중 검정고시 출신자 비율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4~2023학년 수능 응시 원서 접수 결과에 따르면 검정고시 출신 비율이 2.2%에서 3.1%로 0.9%가량 증가했다(그래프1).

인원으로 보면 1만432명에서 1만5488명으로 1456명 늘어난 것에 불과하지만 같은 기간 수능 응시 인원이 65만752명에서 50만9821명으로 14만여명 감소했음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수치다. 특히 연도별 흐름을 보면 대입 정책의 영향을 유추할 수 있다.

검정고시 출신 수능 응시생 비율은 2014학년 이래 꾸준히 하락하다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이 발표된 해 치러진 2020학년 수능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선발 비율이 확대되고 약대가 학부선발을 시작하면서 상승폭이 커졌다.

또 최근 10년간 서울대가 발표한 신입생 선발 결과를 보면 2014~2019학년까지 검정고시 출신 합격자는 평균 15.5명이었다가 2020학년 33명으로 급증, 2021학년엔 45명에 달했다(그래프 2).

한 서울 일반고 교사는 "자퇴를 고민하는 성적대가 더 넓어졌는데, 특히 상위권이 늘었다"며 "성적 때문에 자퇴를 고민하는 층은 주로 내신 3~4등급대 학생이었지만 최근에는 2등급대 혹은 주요 과목 시험에서 삐끗한 학생들까지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수능 대비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입시 전문가들은 자퇴 원인으로 정시 확대를 지목한다. 2019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 이후,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선발 인원이 늘면서 고교를 벗어나 재수학원 등에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함께 준비하려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재학생은 고교를 다니며 정기고사, 수행평가, 동아리 등 각종 교내활동을 해야 한다. 배우는 과목도 다양하다. 이런 학교생활은 입시만 놓고 보면 비효율적일 수 있다. 정시는 수능만 집중해 준비하면 된다.

신동원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전 서울 휘문고 교장)는 "특히 학업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이 모이는 교육특구 학교, 특목·자사고 재학생들은 정기고사 결과를 받은 후 수시로는 눈높이에 맞는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생각에 '정시 올인'을 위해 자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부 의학계열의 지역인재전형을 겨냥한 자퇴도 증가세를 보인다는 후문이다. 비수도권 대학의 의예·치의예·한의예·수의예과와 약대, 간호대는 모집 정원의 20~40%를 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학생들로 의무 선발해야 한다. 2027학년 대입까지는 대학 소재지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간 공부하고 졸업하면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때문에 최근 고1이 중간고사 이후나 1학기 말에 자퇴를 하고, 비수도권 고교로 재입학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전학 대신자퇴 후 재입학을 통해 최상위권 교과 성적을 확보하고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해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에 진학하려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강남 학원가 '자퇴 마케팅' 한창 = 자퇴생을 겨냥한 사교육 마케팅도 자퇴를 부추기고 있다. 포털 사이트나 학원가에선 자퇴 후 검정고시·수능 학습법에서 전문성을 갖췄다는 사교육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학부모는 "학교 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고민이던 중에 유명 학원에서 상담을 받았다"며 "하루 5명 이상의 자퇴 고민을 응대한다며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N수생들의 높은 성적을 보여주며 자퇴 후 수능 대비에 집중했을 때 비슷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며 "수능 준비는 학원이나 인강에서 해왔고 정시 비중이 높아진 상황이라 혹했다"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도 이런 점을 포인트로 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마케팅을 하고 있다.

1인 미디어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SNS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는데, 그중 자퇴는 꽤 인기 있는 키워드다.

실제 유튜브에서는 '자퇴' 관련 키워드가 하루 평균 10만건 이상 검색된다. '자퇴 브이로그'를 검색하면 '자퇴 할? 말?' '프로자퇴러의 고민상담소' '내신 1.2가 자퇴?' '자퇴 Q&A. 부모님께 자퇴 허락받는 법' 등 다양한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다.

9년 간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며 친구들과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는 어느 유튜버의 영상은 1년 만에 조회수 890만회를 넘길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한 또래들의 생생한 자퇴 경험담은 청소년들의 자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흥적 '자퇴' 결정 경계해야 = 문제는 자퇴를 한 다음이다. 눈높이에 맞는 대입 결과를 위해 학교를 그만뒀지만 성공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교 성적대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낮은 성적을 얻어 입시에 재도전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충동적인 자퇴 결정을 하지 말라고 말린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강사인 박소연 상담사는 "자퇴를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불과 한달도 걸리지 않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지만 자퇴는 절대 즉흥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퇴 후 기본적인 생활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 삶 자체가 무너지는 사례를 많이 본다"고 말한다.

고교교사들은 자퇴 전 본인의 눈높이와 실제 학업역량, 수능에 맞는 학습성향, 학교 밖에서도 학업을 성실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생활 태도 등을 냉정히 따져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아 걱정한다.

학생들이 학교 시험 결과를 보고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혹은 학교 활동에 부담을 느낄 때 수능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자퇴를 성급하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장성민 서울 선덕고등학교 교사는 "자퇴는 또 다른 출발점일 뿐, 반드시 좋은 결과를 담보하진 않는다"며 "여러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자신의 실력 등 현실을 따져본 뒤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수 기자·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