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가공식품 탄생 서사 톺아보기

2023-07-04 13:34:54 게재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

아이돌처럼 새로운 식품은 마트에 중심을 버젓이 차지하다가 새로운 제품에 밀려나길 반복하면서 명멸한다. 신제품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 팀 내외에서 협업과 줄다리기를 반복하고 이론과 실제가 충돌하면서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과연 대기업은 어떤 루틴으로 식품을 개발할까? 식품업계에서 독보적인 스타 상품을 배출한 어느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났다. "바쁜 일상에 매달 배포되는 기획부서의 세계적 제품·기술 동향에 관한 보고서를 눈여겨본 적이 없었는데 그 보고서가 신제품 태동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신제품 개발 회의가 있었을 때 알게 되었죠. 신제품에 대한 제안과 콘셉트 회의의 주제가 바로 보고서의 신제품 동향에 나온 내용이었거든요. 지금은 매달 꼼꼼히 읽어보고 검색도 하죠."

이 콘셉트 회의를 통과하면 신제품의 상품화 과정은 시작된다. 요리전문가가 콘셉트 안에서 재료를 바꾸고 조리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본다. 즉 대충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현실이란 벽과 마주치게 된다. 플레이트 위에 정갈하게 나온 요리와는 다른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재료와 배합, 그리고 공정에 필요한 기계장치들의 조합, 작동조건 등 도마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제품으로 되기 위한 현실과 싸움이 시작된다. 이 싸움의 일선에 서는 이들이 개발팀원들이다.



맛집 쓰레기 봉투 수색해 비법찾기도

"가령 떡갈비라고 하면 전국의 이름 좀 있다 하는 떡갈비 집은 거의 다 둘러보게 돼요. 맛의 비결을 찾는 것이죠. 어떤 특별한 재료가 있는지 말이죠. 전국의 맛을 보는데 이 과정 동안 1개월에 10kg이 불어난 적이 있어요. 그간 해왔던 몸 관리는 포기해야 합니다. 정말 맛있는 집을 찾았는데 주인에게 특별한 재료나 조리의 비결을 물어봤더니 인자하신 얼굴로 '그저 정성의 맛이죠' 하고 웃으시더라고요. 알려줄 수 없다는 신호죠. 그러면 그날은 모텔에서 밤을 새워 그 가게 뒤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뒤진 적도 있어요. 어떤 재료를 구매했는지 혹시나 영수증이 있나 해서죠. 물론 그 과정이 지나니 어디 떡갈비만 먹어도 재료 종류와 비율까지 다 맞추게 되더라고요 "

이렇게 발로 뛰어 얻은 정보는 배합비와 공정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수없이 개발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만들고 맛보길 반복한다.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레시피는 공장 공정에 얹게 되는데, 이때 공장장과 기싸움을 견뎌내야 한다.

콘베이어의 속도, 탱크 가열 온도와 지체시간 등 공장장과 수없이 싸우고 타협, 다시 모든 것이 뒤집히길 몇번이고 반복하게 된다. 이 과정에 연구원들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화학변화에 의한 맛, 색과 향기의 변화, 온도처리에 따른 단백질의 변성, 전분의 호화과정, 냉동에 의한 물성의 변화, 살균처리에 따른 미생물의 변화 등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상품화 현실을 조우할 때 지식은 큰 무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최종 선정된 제품은 주부 100여명을 모집해 80점 이상의 관능평가 결과를 받지 못하면 다시 시작한다. 말이 80점이지 깐깐한 우리나라 주부의 평가에 80점은 고득점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포장지에 들어갈 영양 정보나 표시사항 준비를 하게 되는데 몇명이 교차점검을 한다. 한번 잘못된 문구가 들어간 채로 몇백개 포장롤을 찍어내면 모두 버려야한다.

이제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제품이 생산되어 출시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몇개월 동안 혹시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개발팀은 의무적으로 초동관리를 한다. 이 긴 여정은 초동관리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이 긴장의 날들로 하나의 제품이 개발되는 것을 우리는 거의 모른다.

식품 전문인력의 부족

마지막 후배의 말들은 여러모로 생각해야 할 바가 있다. "개발팀으로 쏟아부은 열정이 제품으로 승화되어 마트에 깔린 것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 일에 자부심을 느끼죠. 그러나 일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요. 젊은 신입의 개성이 문제가 아니라 전문적 역량이 놀랄 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요. 모두 학과 이름을 식품생명학과 같은 어중간한 이름으로 바뀌니 학과 커리큘럼이 식품도 아니고 생명과학도 아닌 전문인력을 탄생시키거든요.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혁신적 제품의 탄생이 한동안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