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유족·시민단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고발
'셀프 수사' 논란에 국수본서 직접 보고받고 지휘
20일 국과수와 지하차도·제방 2차 합동감식 실시
'셀프 수사' 논란에 구성원이 전격 교체된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 전담수사본부가 2차 현장 감식에 나서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족과 충북지역 시민단체들이 자치단체와 관련 정부 기관장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경찰에 접수했다.
수사본부는 20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2차 현장감식을 실시했다.
이날 현장감식에서 수사본부는 배수펌프와 배수로가 제대로 작동됐는지를 확인했다. 지하차도에는 분당 12톤의 물을 빼낼 수 있는 펌프 4대가 설치돼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해 차도를 관리하는 충북도는 배전실이 물에 잠기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수사본부는 또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미호강 임시 제방에 대한 2차 합동 감식도 실시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 17일 제방에 대한 1차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2차 감식에서는 붕괴 원인을 밝히기 위해 3D 스캔으로 현장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앞서 19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전날 충북경찰청에 설치된 오송 침수사고 수사본부장을 송영호 충북청 수사부장에서 김병찬 서울청 광역수사단장으로 교체했다. 충북청장은 수사 공정성을 고려해 수사지휘에서 제외하고 국수본이 직접 지휘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수사본부는 충북청 수사부장 송영호 경무관을 본부장으로, 국무조정실과 충북청·청주 흥덕서 수사관 등 88명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참사 당시 112 신고를 접수하고도 경찰이 부실하게 대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대로 된 수사가 되겠냐'는 셀프 수사 논란이 일었다.
앞서 경찰은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초동수사를 서울청에 맡겼다가 셀프 수사 논란이 제기되자 국수본 특별수사본부로 수사 지휘부를 전환했다.
수사본부장 교체와 함께 서울청 소속 수사관들도 수사본부에 합류한다. 경찰은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6개팀 수사관 50명을 추가 투입한다. 기존 인력에 더해 수사본부는 수사관 68명, 피해자보호·과학수사·법률자문 지원인력 70명 등 총 138명으로 확대 운영된다.
김병찬 수사본부장은 "이번 사고의 중대성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엄중한 목소리를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한 점 의혹 없도록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참고인들 사고원인으로 '임시제방' 지목 = 경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고 목격자와 구조자, 마을 주민 등 15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15일 오전 8시 40분쯤 미호강 옆 미호천교 신설 공사로 급조된 임시제방이 붕괴되면서 참사가 발생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방붕괴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관리·감독을 맡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 대한 강제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사는 사전 위험경고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침수 4시간여 전인 오전 4시쯤 충북도·청주시·흥덕구 등 76개 기관에 '홍수경보' 통보문을 보냈다. 2시간여 전에는 흥덕구청 담당 부서로 연락해 주민대피와 교통통제 필요성을 알렸다. 하지만 도로 통제는 없었다.
경찰 대응도 부실했다. 경찰은 참사 당일 오전 7시 4분과 7시 58분 두 차례 112 신고를 받고도 사고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가 아닌 '궁평'지하차도로 출동했다. 참사 발생 20여분이 지난 오전 9시 1분에서야 처음 현장에 도착했다.
◆책임 떠넘기기 급급 =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관계기관 수사에 착수했다. 또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보다 형량이 높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등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이 원인인 재해를 의미한다. 100m 이상인 지하차도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된다. 궁평2지하차도는 685m다.
공중이용시설인 지하차도에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중대시민재해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대시민재해가 입증되면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가 2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인 것과 비교하면 더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
관련 기관들은 기존 재해 관련 법보다 처벌이 훨씬 무거운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려는 듯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청주시는 "지하차도 관리는 충북도 업무"라며 "우리가 도에 보고할 의무도 없다"고 버티고 있다. 충북도는 제방 붕괴를 가장 큰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며 제방을 쌓은 행복청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행복청은 제방은 문제가 없었는데 워낙 비가 많이 내려 붕괴됐다며 위법사항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늑장 출동한 경찰은 도로통제 1차 책임은 해당 지자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합동 분향소 설치해 달라" = 이런 가운데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일부 유족들이 19일 충북지사, 청주시장과 행복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이들은 충북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호천교 공사 현장의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6만톤의 물이 궁평2지하차도로 밀려 들어왔다"며 "단 몇 분 만에 17대의 차량이 갇히고 14명의 무고한 시민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엄중 수사해 참사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충북지사·청주시장·행복청장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서둘러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 분향소를 설치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