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5억년 전 한반도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2023-07-25 11:35:11 게재
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지구과학

요즘 우리나라 TV 드라마는 회귀물이 대세인 듯하다. 흙수저 주인공이 경제부흥기 재벌집 손자로 깨어나거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시점으로 가서 사건을 바로잡는가 하면, 심지어 구미호가 일제 강점기로 끌려가 일본 요괴들과 싸우는 등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꼭, 인간이 살던 때로만 가야 할까? 겨우 몇십년, 몇백년 말고 아예 한 5억년쯤 타임슬립을 해보면 어떨까? 한반도가 얕은 바닷속에 있었던, 삼엽충들이 한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때로.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그에 따라 대륙들 또한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며 그 모습과 위치를 바꾼다. 그래서 어떤 땅은 바다가 되기도 하고, 어떤 바다는 다시 땅이 되기도 한다. 한반도 또한 그렇다. 끊임없이 모습과 위치를 바꿔왔고, 앞으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고생대(약 5억4100만 년 전 ~ 2억5190만 년 전)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평생 삼엽충을 통해 한반도의 고생대를 연구해 온 지질학자 최덕근 교수는 이렇게 추정한다. 5억년 전쯤 한반도는 중한랜드와 남중랜드로 분리된 상태로 남반구의 곤드와나대륙 끝에 있었고 그 사이에는 조선해라고 명명된 얕은 바다가 있었다. 이 바다는 고생대 초에 전 지구에 걸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곤드와나대륙 가장자리의 낮은 지형에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생겼다. 이렇게 새로 생긴 바다, 조선해에 곤드와나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퇴적물이 쌓이면서 고생대 지층이 만들어졌다. 지층과 협곡이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낸 미국 그랜드캐니언 하부의 사암층도 이때 쌓인 지층이다.

5억 년 전 무렵의 고지리도(출처: 최덕근과 함께하는 지구탐구)


고생대 중기에는 조선해가 융기하면서 육지가 되고 중한랜드가 곤드와나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다 위를 떠돌기 시작한다. 고생대 말기에 접어들어 대륙 연안과 하천 주변 환경의 퇴적물들을 쌓다가 고생대가 끝나갈 무렵, 지구상에 흩어져 있던 대륙들이 다시 모여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를 이룰 때 마침내 중한랜드와 남중랜드도 충돌하면서 지금의 한반도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2억 5000만 년 전 무렵의 고지리도(출처: 최덕근과 함께하는 지구탐구)


이러한 고생대 한반도의 모습은 강원도 남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북부에 주로 남아 있다. 특히 강원도 태백 정선에 가면 고생대 한반도의 역사, 수억년에 걸쳐 지구가 새겨놓은 흔적들이 담긴 지층과 그들이 만들어 낸 절경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태백 정선에서 볼 수 있는 고생대 흔적

먼저 강릉에서 출발해 정선 구절리로 향해보자. 한강의 원류가 되는 두 물줄기 중 하나인 송천을 따라 놓인 415번 도로를 이용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호젓하게 달리다 보면 오장폭포를 만나게 된다. 안내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폭포라는 설명만 있지만, 이곳에서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잘생긴 거대한 습곡과, 습곡의 아래로 볼록한 부분인 향사의 중심부로 물이 떨어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415번 도로 옆으로 나란히 흐르는 송천을 따라 10km쯤 더 달리면 눈앞이 탁 트이는 장관과 함께 두 물이 합류하는 정선 아우라지가 나타난다. 대관령에서 흘러온 송천과 한강의 발원으로 불리는 검룡소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바로 이곳에서 만나 강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강은 계속해서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오대천과 합류해 조양강이 되고, 동강이 되었다가 영월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된다. 이후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어 서울을 가로지른다.

다시 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해보자. 1시간쯤 달리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엄청난 기암절벽이 나타난다. 금강산과 같은 절경이라 해서 소금강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은 흐르는 물이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지층을 깎아내어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풍화에 강한 규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덕에 흙으로 변하지 않고 남아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


고생대 초기 지층을 만날 수 있는 구문소

계속해서 우리나라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만항재(해발고도 1330m)를 지나 남쪽으로 달리면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는 이름을 가진 구문소가 나온다. 구문소에서는 다양한 지질구조와 퇴적구조,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지형이 잘 드러나는 고생대 초기 지층들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삼엽충 화석들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구문소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만날 수 있다. 이 연못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이 흘러가며 지층을 깎고 운반하고 퇴적시키면서 아름다운 지형들을 만들어 내며 한강으로 흘러간다.

지구는 대륙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땅과 바다가 뒤바뀌는 등 서서히 바뀌어 가는 그 모습들을 지층과 암석 속에 그 흔적을 남기며 유유히 살아가고 있다. 5억년의 시간이 켜켜이 새겨진 땅, 이번 여름엔 고생대 한반도의 흔적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