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의 일상화된 군사주의

2023-07-31 12:10:27 게재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

북한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 또는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7월 27일, 북한은 올해 두번째 열병식을 개최했다. 그동안 열병식이 주로 내부 결속과 무기 과시 등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번 열병식은 외교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당초 목적이 뭐든 간에 북한 내에서 보도를 통해 방송이 되기 때문에 결국 열병식의 대내적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 또는 '전승절'이라 부르며 기념하는 자체가 전쟁과 군사적 위기를 대내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체제유지, 통치기제로 군사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군사주의는 군사를 우선한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되기도 하고, 군사적 호전성이나 군사제도 우선시 등과 등치되기도 하며, 집단주의와 전체주의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국가의 전 영역에서 전쟁위기 전쟁준비라는 군사적 가치가 지배함으로써 군사주의는 내면화·일상화되어 사회 전 부분에 스며들어 이데올로기로서 뿐만 아니라 신념과 가치로서 작동한다.

그렇기에 군사주의는 국가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적 영역에서도 지배력을 발휘하며 국가 구성원의 가치·신념·행위양식에 영향을 미친다. 기념일, 박물관이나 기념관과 같은 상징체계, 군대나 국방과 관련한 제도 언어 문화 등을 통해 군사주의가 개인 또는 집단에게 일상화 내면화됨으로써 군사주의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가 되고 그러한 가치의 기반 하에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군사주의는 단순히 군을 우선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위계를 형성·강화하고, 그에 따른 차별과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한다.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무감각하게 함으로써 전 사회에 걸쳐 행해지는 폭력과 차별에 주민이 순응하게 만든다.

군사주의의 일상화를 통한 통치

북한 역시 군사주의를 통치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평양에 전시되어 있는 푸에블로호가 단적인 예다.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의 푸에블로호를 전시해 반미정서와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북한 주민에게 일상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통치를 위해 내세우는 수많은 전략과 통제를 주민 스스로가 납득하도록 심리적 정서적 기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충성의 강행군' '전력전' '반드시 점령해야 할 고지' '돌격대' '○○전투' 등 군사적 용어를 활용해 산업현장에서 생산성을 독려해왔다. 전쟁 전투의 메타포를 통해 전시의 긴장을 조성해 목표 달성을 강제하는 등 사회를 군사적으로 조직해왔다.

또한 보상체계도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된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영예군인에 대한 예우를 통해 국가에 충성하는 이들이 받게 될 보상을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국가기념일에 이루어지는 열병식이나 군 관련 행사, 최고지도자의 군대 방문 등은 군사적 가치가 더욱 강화되는 데 일조한다.

또 행사에 보여지는 여러 공연이나 퍼포먼스 속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집단적 동작과 자세 등은 군사주의의 내적 속성이라 일컬어지는 집단주의를 눈으로 확인하고 이것을 내면화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기능한다.

한편으로 사회적 질서를 규정하는 데도 군사주의의 역할이 나타난다. 전방과 후방의 구분, 정치사회적 지위에 따른 대우와 위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군사주의의 효과이면서 동시에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변화된 주민인식과 충돌하지만 효용성 여전

최근 변화한 북한 주민의 인식이나 문화 등이 기존의 군사주의 문화와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하기는 한다. 집단주의 우선,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라는 것이 외부적으로 발현되는 정도에서 과거와 지금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주의는 국가에 대한 태도나 행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차원에서 가치와 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주의의 통치 효용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쟁위기에 대한 담론화가 지속되고 국가적 차원의 의례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군사주의는 여전히 북한에서 통치 기제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군사주의문화는 의식적 무의식적 차원에서 내면화 심성화되어 있기에 쉽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기에 북한은 앞으로도 군사주의 속성을 활용한 통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