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리 따라 '판사 탓' '현명한 판단'
정치권, 법원 판결 놓고 '오락가락' 평가
정진석 "징역 6개월, 감정적 판결" 반발
중앙지법 "사법권 독립 훼손" 유감표명
정치인들 판결을 놓고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은 자신에게 불리하면 판사의 특정한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며 '판사 탓'으로 돌리고, 유리하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라며 추켜세운다. 정치권의 '내로남불' 같은 해석에 대해 법원은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사법권 독립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4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징역 6개월)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다툼은 실형을 선고한 판사 개인의 과거 행적과 정치적 성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법원은 이례적으로 유감 입장문을 내며 "개별 판사에 대한 공격을 삼가라"고 반박했다.
이 사건의 판사는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판사다. 박 판사는 지난 10일 검사가 벌금 500만원을 구형한 정 의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감정적 판결"이라고 반발했고, 국민의힘도 판사성향을 문제삼고 나섰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3일 논평에서 박 판사의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것으로 보이는 노 전 대통령 탄핵 관련 글을 들어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로 가득 차 있다"며 "이번 징역 6월의 판결은, 결론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로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쏟아낸,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단정했다.
국민의힘과 정 의원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놓은 '판사 탓'을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여당이었을 때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판결에 대해 사법부와 특정 판사를 공격했다.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선고 결과를 두고 민주당은 김 지사의 판결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재판을 맡은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진보성향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당시 성 부장판사를 국회의 탄핵 소추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당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성창호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을 때나 '국정농단' 사건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했을 때는 환영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의 '내로남불'식 이중잣대에 문제가 많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환영하다가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면 돌변한다"고 지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인 여부도 이번 판결에서 논란이 됐다.
박 판사가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박 판사의 판결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대목이다.
민주당 장경태·우상호 의원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건도 공인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장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때 김 여사가 심장병을 앓는 캄보디아 어린이와 조명을 사용해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고, 우 의원은 김 여사가 새 대통령 관저로 결정된 외교부 장관 공관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당시 정의용 장관의 부인에게 '나가 있어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명예훼손죄로 처벌받는다. 만약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라디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명예훼손 행위를 했다면 형법 또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형법의 이러한 태도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을 조각하여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무원 내지 공적인물이고,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것이라면 대법원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언론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취한다(이른바 '공인 이론'). 심사기준을 완화하는 것이다.
명예훼손을 한 '가해자'가 정당 대변인이나 간부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대법원은 다시 '악의적 공격의 법리'라는 별도의 차별화된 법리를 전개한다.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닌 한 쉽게 책임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경태 우상호 의원의 사건에서도 김 여사의 공인 여부에 따라 판단이 갈릴 수 있어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13일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문제들을 근거로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는 해당 재판장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모든 법관의 재판절차 진행 및 판단 과정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의 독립이나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