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론 휩싸인 '인사청문회' | ③ 대수술 할 수 있을까
타협·존중 없는 정치 … '하루만 버티자' 관행에 제도보완 한계
"미국 대통령, 의회와 비공식적 협의 … 의회, 대통령 인사권 존중"
국회 입법조사처 "대통령, 철저한 검증과 국회와의 소통 필요"
23년간 인사청문회가 운영되면서 지적돼온 제도적 허점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실의 사전검증 강화와 후보자의 자료제출 범위 확대·강제력 강화, 허위 진술 차단 그리고 인사청문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 확보 등으로 맹점을 메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 쪽에서는 윤리 등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의견을 주로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여야가 바뀌면 기존 주장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지는 경향을 보여줬다.
인사청문회가 처음 도입된 2000년 김대중정부, 국무위원들까지 청문대상을 확대했던 노무현정부에 이어 보수정부인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를 거친 후 문재인정부, 윤석열정부로 정권이 옮겨가면서 진보와 보수정부가 수차례 입장을 바꿨지만 여야 모두 현재 인사청문회 제도의 한계와 보완점을 사실상 모두 내놨다고 할 수 있다.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21대 국회의 인사청문법 개정안을 보면 양경숙·정성호 민주당 의원,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허위 진술이나 거짓 서면답변을 징계하는 내용으로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과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자료제출 의무화를 규정하면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기관과 개인을 상대로 징계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실의 공직자 사전검증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민주당 정성호, 홍영표 의원,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제안했다. 특히 이 의원은 사전검증 답변서와 임명권자의 평가결과를 같이 청문요청서에 첨부하도록 했다.
홍영표, 전해철, 정성호 의원은 도덕성과 업무역량 검증을 분리해 도덕성의 경우엔 비공개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청문 기간을 현재의 '20일 이내'에서 '30일 이내'로 늘리거나(전해철, 홍영표 의원), '10년치'의 국세 지방세 사회보험료 납부 및 체납기록을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김승원, 김의겸 의원)도 나왔다.
◆미국 100년 인사청문 역사에서 장관 부결 3번뿐 = 전진영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인사청문제도의 모국 '미국' 사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미국 의회의 인사검증권한은 막강하다. 인사 청문 기한이 없다. 또 상원에서 인사청문 결과 '부결'로 나오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미국 헌법 2조 2항엔 상원의 인준청문회와 관련, "대통령은 대사와 기타 외교사절, 영사, 연방대법관 및 헌법에 특별한 규정 없이 법률에 따라 지명하는 모든 연방공무원을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 입법조사관은 "20세기 100년 동안 장관에 대한 인준안이 상원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된 경우는 세 차례밖에 없을 정도로 인준율이 높다"며 "이는 무엇보다도 백악관 차원에서 후보자에 대한 엄격한 사전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상원의 인사청문회 실시 이전에 대통령이 의회지도부와 비공식적으로 협의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관행, 장관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존중하는 정치문화와 전통도 그 배경으로 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정부로 올수록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위원이 증가하면서 인사청문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며 "대통령은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철저히 해서 국회 인사청문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국회 및 여야정당과 소통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국무위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정치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 … 제도가 문제일까"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임명하는 게 이제 관례로 굳었다"며 "과거엔 도덕성 검증으로 여론도 많이 움직이고 낙마하기도 하고 대통령 평판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임명을 한다고 하고 후보자나 임명권자는 (인사청문 기간인) 하루 이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결국 임명할 텐데'하는 야당의 패배의식과 결합하면서 야당 의원이 뭘 견제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면서 "국민들도 도덕성 문제 등에 약간 식상한 것 같다. 이런 나쁜 관행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정치를 전공한 이 교수는 "미국은 큰 틀에서 대통령이 협조라든지 타협이 관행으로 굳어 있는데 우리는 탄핵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야당은 타협보다는 투쟁성이나 선명함이라는 게 강성 지지자들한테 먹힌다고 보고 있는 게 문제"라며 "지금 제도적 보완을 통해서 더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좀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청문회만의 문제라면 그걸 고치겠지만 인사청문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정치가 사라져 있다"며 "인사청문회 파행은 하나의 예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