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누가 홍범도 장군에게 돌을 던지랴
지난 2주간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이념논쟁'이 뜨거웠다. 육사와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1920년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한 이력이 있어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두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급기야 국방부 청사 앞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 이전과 해군의 1800톤급 잠수함 '홍범도함' 함명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행적에 문제만 제기할 뿐 학계와 전문가의 검증이나 여론 수렴과정 없이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일방적으로 흉상 이전을 강행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념대결은 30년 전 종언을 고하고 냉전사박물관에 유폐된 지 오래다. 그런 공산주의의 망령을 소환해 장군을 심판대에 세우려는 것은 과거 보수정부들이 재미를 본 전형적인 색깔론과 다름없다. 이런 모습을 100년 전 홍범도 장군이 본다면 통탄할 일이고, 일본 제국주의 후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세운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필자는 2018년 봉오동 전투 현장을 답사한 적이 있다. 현지 안내원은 "당시 홍범도 부대가 산 위에 매복해 있다가 계곡 아래에서 올라오는 일본군을 기습했다"고 설명했다.
진보 보수 떠나 홍범도 지우기에 항의 여론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던 분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홍범도 장군에게도 분명 공과가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행태는 장군의 공적보다 잘못만 들춰내는 마녀사냥식 홍범도 지우기다. 그림자로는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국민 다수는 "시대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100년 전의 홍범도 장군의 행적을 오늘날의 잣대로 사상검증을 하는 것은 빈약한 역사의식의 발로"라고 목청을 높인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는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라고 했다. 여기에 비춰볼 때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제1차세계대전 후 서구열강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에 눈과 귀를 닫았던 암울한 시기에 일제에 응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군중을 광적인 행동으로 몰고 가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다.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것 역시 일종의 적과 아 식별용 정치적 프레임이다.
이는 마치 2012년 이명박정부 당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국민 안보의식 고취 및 나라사랑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실시했던 '종북세력의 실체 비판 교육' 시즌2를 연상케 한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이 주창한 '2013년 체제'가 북한 김정일의 '강성대국 완성의 해'와 맥을 같이 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진보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군 장병과 학생들을 교육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그렇게 탄생한 박근혜정부의 귀결은 시사하는 바 크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안보 경제 인구 등에서 삼각파도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극복의 해법은 내부 분열과 경쟁이 아닌 열린 사고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소모적 이념논쟁보다 관용의 용광로를 뜨겁게 달궈 국민통합을 이뤄나갈 때 우리의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홍범도함' 함명 변경 논란, 종지부 찍어라
해군은 육군과 출발이 다르다.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다. 그래서 해군은 창설 당시부터 일본군 출신이 없었고 "우리 손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뜨거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오늘날 선진해군을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칠흑 같은 깊은 바다, 좁은 잠수함 안에서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홍범도함 장병들의 가슴에 훈장은 달아주지 못할망정 주홍글씨는 새기지 말아야 한다.
누가 감히 홍범도 장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누구도 오늘날 잣대로 100년 전 홍범도 장군을 오명으로 덧칠할 자격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국선열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하고 또 가슴에 새기는 일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