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장, 바이든 탄핵 조사 지시

2023-09-13 12:02:44 게재

백악관 "최악의 정치" 반발 … 공화당내 강경파 달래려는 의도도

미국 공화당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카드를 꺼내 들자 백악관은 최악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현 바이든 대통령의 재대결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탄핵이슈가 급부상한 셈이다. 양당 유력 주자인 바이든과 트럼프는 두 사람 모두 고령인 데다 사법리스크까지 안고 있어 언제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에 대한 공화당의 탄핵 검토 역시 그 중 하나다.

미국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12일(현지시간) 의사당에서 하원의 관련 상임위원회에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 착수를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12일(현지시간) 하원의 관련 상임위원회에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 착수를 지시했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지난 수개월간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행동, 즉 부패문화에 대한 심각하고 믿을만한 혐의를 밝혀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매카시 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 관련 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탄핵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헌터가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부리스마 홀딩스 임원으로 일하면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해왔다.

또 국세청(IRS) 내부고발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바이든 정부가 헌터의 탈세 문제 관련 기소를 막았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필요성을 거론해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20년 12월 22일 보도에서 헌터 바이든이 2017년에 중국의 에너지 총수로부터 2.8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받고 그와 삼촌이 경영하는 회사에는 500만 달러를 송금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회사인 부리스마는 아들 헌터 바이든을 이사로 취임시킨 후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한달 월급으로 5만달러씩 지급했는데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부패 스캔들 조사 위원장인 아버지의 무마 의혹을 산 바 있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의회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가족의 해외 사업과 관련해 자신이 아는 내용에 대해 미국인에게 거짓말을 했다"면서 "미국인들은 공직이 판매 대상이 아니며 연방정부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가족의 행위를 덮는 데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원의회의 탄핵 조사(impeachment inquiry)는 탄핵 추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조사지만 탄핵 추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헌법 절차는 아니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하원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상원에서의 탄핵 재판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매카시 의장은 하원의 감독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세입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대통령과 백악관이 조사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미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할 경우 이탈표가 없으면 가결처리할 수 있다. 다만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어서 탄핵소추가 승인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백악관은 즉각 반발했다. 이언 샘스 백악관 감독·조사 담당 대변인은 엑스에 올린 글에서 "하원 공화당은 대통령을 9개월간 조사해왔는데도 잘못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최악의 극단적 정치"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은 매카시 의장이 이날 탄핵 조사 개시를 발표한 배경에는 예산안 처리 문제 등을 두고 의장과 대립하는 공화당 내 강경파를 달래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 탄핵에 적극적인 공화당 강경파는 그동안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예산안 협상에서 충분히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며 의장직을 박탈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위협해왔다.

이는 매카시 의장이 올해 초 선출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의 표를 얻기 위해 단 한 명의 의원만 요구해도 의장 소환 투표를 하도록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강경파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평가했고, 워싱턴포스트(WP)도 매슈 게이츠 등 강경파 의원은 매카시 의장이 의장직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탄핵 조사 개시를 발표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매카시 의장이 하원 전체 투표를 통해 탄핵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표결 없이 바로 탄핵 조사를 지시한 데에는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충분한 지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도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그동안 내년 11월 하원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해 즉각적인 탄핵 추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한면택 특파원 · 정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