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공백 지속 "사법부 장애 우려"

2023-09-26 11:16:25 게재

전원합의체 판결·대법관 인사 등 미뤄질듯

안철상 권한대행 "어려움 있을 것으로 예상"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법부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당장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있는 전원합의체 판결과 내년 1월 공석이 되는 두 대법관의 후임 인사를 비롯한 법원 정기 인사 등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권한 행사를 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6일 국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 동의가 지연되면서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관 13명 중 가장 선임인 안철상 대법관이 25일부터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권한대행, 권한 행사 어디까지? = 애초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25일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날 본회의가 무산됐다.

현재 정기국회에서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인데, 여야가 협상을 통해 추석 연휴 이후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에 추가 본회의 일정이 잡힐 수도 있다.

문제는 추가 본회의 일정이 잡히지 않고 11월 본회의에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된다면, 대법원장 공백은 장기화되고, 사법부는 격랑 속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데 있다.

대법원장 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권한 행사는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 13명은 25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대법관은 회의를 마친 뒤 "대법원장 공백으로 인해 법원의 기본 기능인 재판업무의 차질이나 사법 행정업무의 지장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대법원장 궐위 상황이 계속될 경우 곧 있게 될 대법관 임명을 위한 제청 절차의 진행이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당장 대법원장이 주재해야 하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 선고 일정 등을 결정한다.

문제는 전원합의체가 출석 대법관 과반수 의견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대법관 의견이 팽팽할 경우 대법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는 어렵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선임 대법관이 재판장 권한대행을 맡아 전원합의체 사건을 선고한 건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정년퇴임으로 3개월 공백이 이어졌던 1978년 12월∼1979년 3월 4건뿐이었다.

◆대법원장 승인 업무 사실상 중단 예상 =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4명씩 나눠 상고심을 심리하는 소부 선고 역시 일부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안 대법관의 업무가 늘어난 만큼 그가 맡은 소부 사건 심리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규칙 제정·개정 등 대법원장 승인이 필요한 일부 업무들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관 후보자 제청과 법원 정기인사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이 내년 1월 1일자로 퇴임하는데, 그 후임을 정해야 하는 대법원장이 오는 11월까지 공석일 경우 대법관 후보자 제청이 이뤄지지 못해 두 대법관이 퇴임할 경우 대법원 재판 자체가 불가능 해질 수도 있다. 대법원장 대행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한 선례가 없다.

법관 인사는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법관 회의의 동의를 받아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판사의 보직은 대법원장이 결정하게 돼 있어, 대법원장 공백 상태에서 사실상 법관 인사 자체가 어렵다.

◆권한대행, 인사 행사하기도 =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면서 국무총리였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2016년 12월 공공기관 인사를 행사한 바 있다. 당시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국무총리실은 "현재 공석 중이거나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장 중 부득이한 경우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한적으로 인사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공공기관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경제와 대국민 서비스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총리실은 노무현정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인사 사례와 관련해 △장관급 1명(연임), 차관급 4명, 국립대 총장 2명 △한국전력공사 사장,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등 공공기관장 4명 △고위공무원단 263명 등을 인사했다고 전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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