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보통 평안하지만 아주 가끔은 치명적인 지구에서의 삶

2023-09-26 12:10:46 게재
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지구과학

얼마 전 화산활동과 관련한 자료가 필요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일본 규슈 남부 가고시마현에 있는 사쿠라지마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원래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었으나 1914년 대규모 화산 폭발로 육지와 이어져 반도가 된 사쿠라지마에는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온타케산이 반도 대부분을 차지한다. 온타케산은 현재도 활발한 분화가 일어나는 활화산으로 하루 평균 두번씩, 폭발성이 강하면서 화산재를 주로 뿜어내는 불칸식 분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일기예보 때 화산 분화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또 곳곳에 화산재나 날아오는 화산탄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대피소가 있으며, 사람들은 매일 아침 밤새 집 주변에 쌓인 화산재를 치우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사쿠라지마 사람들은 겨우 100년 전인 1914년 대규모 폭발 당시 엄청난 양의 화산이류(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고체 물질이 물과 섞여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가 마을의 신사를 순식간에 뒤덮어 신사 입구의 높은 기둥문, 도리이의 윗부분만 남아버린 그 흔적 위에 다시 마을을 재건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편 사쿠라지마 북쪽의 거대한 호수처럼 보이는 바다도 화산 분화구가 만든 칼데라다. 이 아이르 칼데라는 화산폭발지수(Volcanic Explosivity Index, VEI) 7에 해당하는 초화산(supervolcano)으로, 사쿠라지마 역시 아이르 칼데라에서 일어난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 화산폭발지수는 화산 폭발의 크기를 0부터 8까지 9단계로 나타내는데 폭발성, 화산 분출물의 양, 화산재 분출 높이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VEI 7에 해당하는 화산은 분출물의 양이 100㎦ 이상, 화산재 분출 높이 25㎞ 이상으로 대기권을 넘어 성층권까지 치솟는다.

화산, 가장 파괴력 큰 자연재해

지구상에서 지난 1만년 동안 일어난 화산폭발 중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946년의 백두산 분화도 VEI 7이다. VEI 7급 분화는 지난 2000년 동안 5번 정도 일어났다. 최고 등급인 VEI 8급의 화산은 2만6500여년 전 일어난 뉴질랜드의 타우포 화산 분화를 마지막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초화산의 분화는 국지적으로는 짧은 시간 동안 용암, 화산쇄설류와 화산재로 인한 인적·물적피해를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도 지구 규모의 기후를 변화시켜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지진보다도 더 큰 가장 파괴력이 큰 형태의 자연재해다.

화산활동은 지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판의 운동 때문에 일어난다. 특히 판과 판이 충돌해 무거운 해양판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해양판 또는 대륙판 밑으로 밀려들어가면서 마찰로 인한 지진을 발생시키고, 더 깊이 내려가면 온도와 압력 증가로 암석이 녹아 마그마가 형성된다. 이렇게 판의 경계와 나란히 생긴 화산섬들이 일본열도 필리핀열도 등이다. 오늘날 화산활동과 지진 대부분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이 환태평양 화산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편 하와이와 같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화산섬들은 판의 이동과 관계없이 맨틀 하부에서 뜨거운 물질이 상승하며 지표와 만나는 열점(hot spot)에서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중생대 백악기에 한반도 전역에서 격렬한 화산활동이 일어났다. 무등산 정상부 백악기 화산암이 만들어 낸 주상절리, 신생대 현무암질 마그마 중심의 화산활동이 만든 제주도 독도 울릉도 같은 화산섬들이 그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화산암 지대는 대부분 활동이 끝난 상태다. 다만 초화산인 백두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려를 자아냈으나 전세계 과학자들과 우리나라 기상청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중이며, 현재는 안정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

다시 활동 시작한 백두산, 현재 안정적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점점 더 서식지를 늘려갔다. 누군가는 초원에, 누군가는 산과 강을 끼고 있는 대륙의 끝자락에, 누군가는 바다를 건너. 화산 주변의 땅은 오랜 시간 쌓인 화산재 덕에 영양이 풍부하고 물 빠짐이 좋은 비옥한 토질과 따뜻한 온천을 품고 있어 정착하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보통은 평안하지만 아주 가끔씩 치명적인 위험을 발산하는 지구. 지구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시간 스케일로 활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기술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지구의 활동에 대해 알아차릴 수가 없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지구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