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진정한 ESG 투자와 지속가능경영 시대가 열린다

2023-10-13 13:14:45 게재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비즈니스 유행어(buzzword) 중 ESG만큼 과대평가와 오해를 불러온 용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책임경영(CSR)이나 공유가치(CSV)와 같은 개념들도 우리 기업들의 경영방식에 내재화되지 못했으며 지속가능경영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용한 경영 성공사례를 찾기 어렵다.

올해 초 필자는 ESG 투자와 경영의 향후 전망을 제시한 글에서 '에너지 위기에도 미국·유럽 투자자는 ESG 투자를 늘린다'고 예상했다. ESG 라벨링과 그린워싱 규제가 엄격해져서 통계상 ESG 투자시장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나 소비자 투자자 종업원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지속가능성 요구가 갈수록 커져 ESG 투자는 가속화되고, 투자자들의 ESG 정보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정보공시 규제가 강화될 것이며, 정치권 산업계 학계를 중심을 ESG 투자 찬반론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예상은 정확히 현실화되고 있다.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ESG 이슈

래리 핑크는 ESG 투자가 고객 자산 운용에 있어 수탁의무(fiduciary duty)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가 최근 ESG가 왜곡되어 정치화·무기화되었기 때문에 용어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각 다른 이유로 ESG 논객들을 비난하고, 특히 우파 정치인들이 이를 이념 전쟁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최근 미국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바이든행정부의 ESG 사기"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과도한 규제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공격했다. 또한 스위스 바이오벤처인 로이반트 사이언스 창업주 라마스와미는 2021년 저서 '워크 주식회사(Woke inc.)'에서 '깨어 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에 빠진 기업들이 인종과 성(gender), 성적지향성에 집착해 사회를 호도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ESG 광풍이 진정되고 공격을 받는 분위기에도 ESG 투자의 흐름은 지속되고 있으며 정치선동(propaganda)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에 대한 반동(anti-woke)이 더 이상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우파정치인들의 공격도 주춤해졌다고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는 분석하고 있다. 올해 6월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 조사에 의하면 유권자의 35%가 깨어 있는 자본주의에 부정적이라 답해 긍정적 답변 36%보다 크지 않았으며, 이를 추구하는 기업에 대한 보이콧을 고려하겠다는 유권자는 26%에 지나지 않았다.

래리 핑크는 탈탄소 거버넌스 사회적 이슈의 중요성 등에 대한 블랙록의 기본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기후변화 이슈에 있어서 화석연료 투자와 에너지 전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2030년까지 블랙록 투자의 75% 이상을 과학기반목표(SBTi)에 기초한 넷제로(net zero) 목표를 가진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고객의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한 블랙록의 수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그것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외형상 ESG 활동이 주춤한다고 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ESG 투자 트렌드가 동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무능한 경영자가 될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기사에서 미국 상장기업이 분기 실적발표회(earnings call)에서 ESG,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지속가능성 등을 언급하는 빈도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한 2020년 2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하다가 2022년 2분기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2분기에는 575개 기업으로 작년 동기 대비 31% 급감했다고 보고했다.

이해관계자 감시 늘자 '그린허싱' 등장

하지만 ESG 이슈 대응 활동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의 DEI 관련 종업원 교육훈련, 탄소배출감소 노력, ESG 관련 정보의 자발적 정기 공시, ESG 성과 연계 임원 보상체계, 기후변화 강제 공시 대비 자료수집과 관련 비용 관리시스템 구축 등의 실질적인 노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KPMG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 CEO의 70%가 ESG 프로그램을 통해 재무성과가 전년 대비 37% 향상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료는 ESG 성과를 중시하는 사고와 지속가능경영이 기업 경영에 내재화되어 가고 있으며 투자자와 규제 당국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실질적 노력과 성과를 분별해 내는 의식과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와 이해관계자들의 감시가 강화되고 실질적인 지속가능경영 성과에 대한 요구와 압력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점이 그린허싱(greenhushing)이다. 즉,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감시와 규제 관련 문제 발생을 회피하기 위해 ESG 성과 자료 공시를 꺼리거나 피한다는 것이다.

사우스 폴(South Pole)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글로벌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관련 임원들 중 25% 이상이 강제 공시 사항 이상의 공시를 꺼린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자서명업체 다큐싸인(DocuSign)이 2022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후 그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또 다른 기업 사례로 퀄컴이나 밀키트회사인 블루에이프런 등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ESG와 관련된 과장 오해 혼란 기만적 행위 등의 거품이 걷히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차분히 ESG 이슈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ESG 본질에 충실하려면 투자자는 진정성을 가진 ESG 투자관행을 만들어나가야 하고 기업들은 자본비용과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ESG 관련 기업과 언론의 언급 빈도가 감소했다고 해서 ESG가 한물 간 개념이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제 본질을 꿰뚫고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진지하게 추진해야 한다.

지속가능경영은 되돌릴 수 없는 추세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출범한 이후 기후변화 관련 기업 재무정보 공시 가이드라인인 TCFD가 만들어지는 데 30년 이상이 걸린 데 비해 2012년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출범한 이후 10여년 만에 생물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자연자원 관련 재무정보 공시 가이드라인인 TNFD(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국내와 국제 정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또는 글로벌 사회에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지속가능발전과 지속가능경영의 중요성은 커질 것이며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인류와 지구가 되돌리기 어려운 재앙으로 향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넘쳐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위협의 인지 정도가 심각함을 반증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지 않고 전략적으로 잘 대응하지 못한다면 장기적 생존이 위태로울 것이다. 인적 자원과 자연자원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시대에 대비해 자원의 가치를 극대화할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노력이 절실하다. 정부는 철 지난 이념타령을 멈추고 국가경쟁력과 미래 성장잠재력을 키워 나갈 실질적 이슈에 진력해야 한다.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교수 엔커(Elisabeth Anker)는 저서 '추악한 자유(Ugly Freedom)'에서 극우주의자들에게 개인의 자유는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 추구를 거부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