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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하마스, 헤즈볼라

2023-10-20 11:31:13 게재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이슬람저항운동)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22개 마을을 점령하고, 민간인 1400명 이상을 살해하며, 200명이 넘는 인질을 잡아 가자지역 하마스 본거지로 끌고 갔다. 이스라엘에서 50개의 목표물이 동시에 공격을 당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이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이래 50년 만에 다시 이스라엘은 적의 기습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와 하마스의 기습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집트는 정규군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하마스는 국가의 정규군이 아니다. 국가 대 국가의 충돌이 아니라 조직과 국가의 대결에서 이스라엘이 참혹한 결과를 맛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마스의 기습을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습 1주일 전 이집트 정보당국이 하마스의 이상 징조를 알려줬음에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1973년 이집트가 공격하기 10일 전 요르단 국왕이 전쟁 가능성을 이스라엘 총리에게 직접 알려줬음에도 대비하지 않아 곤욕을 치렀던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50년 전의 비극이 재연된 느낌이다.

국토방위의 모범 이스라엘의 추락

하마스의 기습작전이 놀라운 이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전략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종시 크기의 가자(365㎢)는 철저히 봉쇄된 지역으로 외부 물자가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무기류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쓸 만한 재료를 모두 이용해 개당 약 600달러가 들어간 로켓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향해 쏘았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개당 6만달러짜리 대공요격 미사일로 구성된 아이언돔을 작동해 막고, 전투기로 발사원점을 공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언돔을 무력화하고자 아이언돔이 막을 수 있는 최대량의 로켓수를 초과해 쏘았다. 20분 동안 하마스 주장 5000발, 이스라엘군 주장 2200여발 이상의 로켓을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하마스 전사들이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스마트 철책을 무력화한 후 패러글라이딩까지 사용해 이스라엘로 진격했다. 아무리 유대교 명절인 초막절 직후 안식일이라 들떠 있었다지만, 국토방위에 이처럼 허점을 보였다는 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허술했다.

국토방위의 모범으로 꼽았던 이스라엘의 이미지가 완전히 추락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 이후 예전의 특권적 지위를 쉽게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힘과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이 열렸다. 모두들 이스라엘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란은 하마스가 서안 지역 인근까지 진출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지금은 가자와 서안 지역이 물리적으로 서로 완전히 떨어져 있고, 통치 세력도 가자는 하마스, 서안은 자치정부의 파타로 갈라서있는 상황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이스라엘의 방어망을 뚫고 서안 인근까지 진격한 것을 축하한 것이다.

무고한 민간인이 공격당하면서 이스라엘은 지극히 당연하게 분노했다. 언론매체는 하마스의 기습에 당한 이스라엘의 분위기가 9.11 공격과 진주만 습격을 당한 미국과 다를 바 없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보복을 천명하면서 예비군 소집에 박차를 가했고, 전열을 정비해 가자지구 지상침투작전을 수립했다. 하마스를 반드시 뿌리째 뽑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하마스는 초등생, 헤즈볼라는 대학생

미국 대통령이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도, 항공모함을 급파한 적도 없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연대감을 표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에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기습공격을 당한 직후 분노에 찬 모습을 보이며 대대적인 공습을 하고 빨리 지상병력을 투입해 하마스를 와해하겠다고 천명한 것과 달리 레바논과 맞닿은 북쪽 국경 상황을 우려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레바논 국경에 자리잡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공격하겠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력이나 경험, 군사작전 수행 능력에서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격차보다 더 크다. 헤즈볼라와 정면충돌이 전혀 달갑지 않은 이유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목표는 둘 다 이슬람적인 삶이 가능한 이슬람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자금을 지원하는 이란이 있다. 하마스는 1928년 이집트에서 시작한 반영운동이자 이슬람주의 운동인 수니파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1987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정부에 처음 항의의 깃발을 내건 민중항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5년 앞선 1982년에 창설됐다.

모체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다. 무슬림형제단 이래 수니 무슬림 세계에서는 이슬람의 실천이 가능한 초국가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러한 이상을 온전하게 성공적으로 실현한 사회가 시아파 이란이라고 근본주의의 사상가 마우두디는 높게 평가했다.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혁명구호로 쓴 호메이니정부는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전력을 기울인다.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의 이름이 '예루살렘'일 만큼 팔레스타인을 억압자 시온주의 이스라엘에서 해방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이 1982년 6월 4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무력화하고자 레바논을 침공하자, "깊은 신앙 설명과 코란에 표현된 알라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데 기반해 이란은 헤즈볼라라는 반이스라엘 저항조직을 창설했다. 레바논에 자리잡은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해방운동에 참가했다. 시아파인 이란과 헤즈볼라와 달리 하마스는 수니다. 그러나 종파의 차이는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해방 앞에 의미없다. 종파의 차이보다 반이스라엘 지향점이 중요하다.

1988년 헌장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사라져야 비로소 하마스의 활동이 끝난다고 명시했다. 이스라엘과 어떤 조약도 휴전도 평화협정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란도 헤즈볼라도 하마스와 같다. 이란은 이스라엘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국제경기에서 이란 선수가 이스라엘 선수와 결승에서 만나 금메달을 다퉈야 한다면 기권할 정도로 이스라엘 무시 태도는 굳건하다. 대화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아파 지역 민병대도 참전 준비 중

이란은 왕관의 보석과 같은 헤즈볼라를 지원하고자 이란에서 출발해 이라크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에 이르는 시아초승달 내지 육교를 완성했다. 이란의 영향력이 페르시아만 아랍국가에 심대한 불안 요소로 작동할 수도 있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창업주로서 심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 멸망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기에 지원하고 후원할 뿐 이란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다. 다만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시온주의 이스라엘 멸망,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대의에 충실하기에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는 서로 동질감을 누린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막고자 이란과 헤즈볼라의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400여만명의 이란 국민이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꺼이 싸우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는 연대감을 과시하며 위기의 순간에 투신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슬람으로 저항하는 하마스, 알라의 당인 헤즈볼라, 그리고 이슬람공화국 이란이 시온주의 이스라엘과 격전을 벌이는 장이 활짝 열렸다. 공존을 포기하고 상대방 절멸과 자기 편의 독립을 꿈꾸는 이들의 격전장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과 역사와 신과 세상을 생각한다. 어린 생명만큼은 보호하소서!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