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참사 뒤집힌 판결 오송참사 영향 미칠까
1심 뒤집고 항소심 대거 무죄·감형
단체장 책임 인정하면서 처벌 못해
허위공문서 작성, 무죄에서 유죄로
2020년 7월 23일 폭우로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은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사고와 관련해 1심에서 실형을 받았던 공무원들이 항소심에서 대거 무죄를 받거나 감형됐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초량사고와 오송참사 두 재난이 재난대응기관의 부실대응 때문에 피해를 키운 지하차도 침수사고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은 만큼 이번 재판결과가 오송지하차도참사 수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부산지법 2-1형사부(재판장 김윤영 부장판사)는 19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9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공무원들은 사고 당시 동구 부구청장(1심 금고 1년 2개월), 부산시 재난대응과장(1심 벌금 1500만원), 그리고 동구 건설과 기전계 전임자 2명(1심 각 벌금 1000만원)이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당시 동구 안전도시과장과 건설과장은 각각 1심보다 줄어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번 재판에서 가장 관심 있는 대목은 사고 당시 구청장 휴가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동구 부구청장 A씨에 대한 판결이다. 1심에서 금고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A씨는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1심 선고 이유는 재난대응 최고 책임자로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동구청장이 사고 당일 오후 8시쯤 복귀해 하천 등 현장점검을 나갔고, 휴가 시점도 사고 당일 오후 6시까지여서 직무대행의 지위는 오후 8시쯤 종료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사고 시점인 그날 오후 9시 25~30분에는 이미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무대행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결국 사고 당시 최고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구멍이 생겼다. 최형욱 당시 동구청장은 휴가 중이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됐고, 직무를 대행한 당시 부구청장 A씨는 구청장 복귀 이후 사고가 발생해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는 오히려 무죄가 유죄로 뒤집혔다. 이 때문에 당시 동구 건설과 기전계 주무관 B씨는 항소심에서 1심보다 늘어난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됐다. 경찰은 풍수해 재난현장 조치 행정 매뉴얼에 따라 열었어야 했던 '상황판단회의'를 열지 않았으면서도 연 것처럼 허위로 꾸민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시민사회는 불만을 드러냈다. 재난대응을 책임지는 지자체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법원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어야 한다"며 재판 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보였다.
정의당 부산시당도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시하고 상고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오늘 판결은 사회적 재난인 초량지하차도참사에 대해 안전총괄 책임을 져야 할 동구와 부산시에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억울하게 돌아가신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더 허망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응은 오송참사가 발생한 충북지역 시민사회도 비슷했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부산 판결로 오송참사 유족들의 상심이 크고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새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만큼 오송참사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동구 초량지하차도참사는 지난 2020년 7월 23일 동구 초량동 부산역 제1지하차도에 물이 차면서 차량 6대가 침수, 시민 3명이 사망한 사고다. 지난 7월 15일 발생한 오송지하차도참사와 유사한 재난이다. 오송참사 때는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돼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당했다.
오송참사 관련해서는 현재 국무조정실이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의뢰한 공직자 등 36명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유가족협의회 등이 이상래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김영환 충북지사, 이범석 청주시장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