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는 '수증기'
'온실효과' 이산화탄소 9%, 수증기 72% … IPCC "6000만년 동안 이런 증가세 없었다"
수증기는 자연적 온실가스 효과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물질로 지구 기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기 내 수증기량은 인간문명의 인위적인 배출보다 기온에 의해 주로 조절된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수증기를 기후변화 강제력이 아니라 되먹임(feedback) 에이전트로 간주해왔다. 농업용수 증발, 원전이나 석탄발전소 냉각수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배출되는 수증기가 지구 기후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정도라는 이유다.
수증기 분자 하나의 지구온난화 기여도는 이산화탄소의 2~3배 정도다. 게다가 그 양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수증기는 대기 잔류시간이 10일로 이산화탄소 1000년에 비해 매우 짧다.
습도가 높은 공기는 식으면 물방울이나 얼음입자로 응축해 비나 눈으로 내린다. 또 인간문명의 인위적 배출에 의해 대기로 유입되는 양이 태양의 복사열에 의한 자연적 증발량보다 상당히 적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수증기가 장기적 온실가스 효과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고 보고 10㎞ 고도 이하의 대류권 수증기는 복사강제력에 기여하는 인위적 온실가스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증기 온실효과, 이산화탄소 8배
지구 대기에 가장 풍부한 온실기체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오존 염화불화탄소(CFCs)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6불화황(SF6) 등이다. 이 기체들이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고려해 온실효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퍼센트로 바꿔 보면 수증기(H2O) 72%, 이산화탄소(CO2) 9%, 메탄(CH4) 4%, 오존(O3) 3% 등이다.(출처 Earth's Annual Global Mean Energy Budget)
수증기는 적외선을 잘 흡수하고 대기 중에 많은 양이 존재한다. 수증기는 그 자체로 약 36~66%, 구름에 의한 영향을 더해 66~85% 가까이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수증기 농도는 지역에 따라 일정하지 않지만 인간에 의한 수증기 농도 변화는 지역적인 영향을 제외하면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수증기는 대기 온도가 높아질수록 단위 부피당 저장할 수 있는 양이 많아진다. 온난화로 대기 온도가 높아질수록 같은 부피의 공기 속에 수증기량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수증기로 인한 온실효과는 지구의 자연적인 작용이지만, 기온상승으로 대기의 수증기 농도가 증가하면 원래의 온실효과보다 훨씬 큰 작용을 하게 된다.
지구 대기는 태양의 단파복사(태양복사)를 받아도 그냥 투과시키기 때문에 따뜻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파복사를 흡수한 지구 표면은 표면온도 255K로 태양의 표면온도 5780K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에너지가 훨씬 작은 적외선을 방출하는 '장파복사'를 한다.
장파복사로 방출된 적외선 에너지 일부분은 우주로 방출되고, 그 일부는 대기중에 있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등 온실기체에 흡수돼 대기층 온도를 상승시킨다. 이를 온실(溫室, greenhouse)에 비유해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라고 한다.
대기중에 있는 기체 가운데 2개의 원자로 구성된 질소나 산소는 적외선 흡수능력이 없다. 반면 원자가 셋 이상인 기체들은 적외선을 흡수해 대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이산화탄소 메탄 오존 아산화질소(N2O) 수증기 등이다.
온실(greenhouse)이라는 표현 때문에 온실가스가 대기권 상층에서 비닐하우스 온실처럼 보온막을 형성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온실가스는 대기층 전체에 분포하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보다는 침낭 안에 들어있는 거위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필파워가 높을수록 침낭이 더 따뜻한 것과 같은 이치다.
대기 중 수증기가 많아지면 온실효과에 의해 기온이 상승하는 양(+)의 되먹임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구름이 많아지며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차단해 기온 하강을 유발하는 음(-)의 되먹임 효과도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수증기가 바다와 육지에서 증발하고 대기중으로 퍼졌다가 비나 눈이 되어 떨어진다. 그 양은 매년 485조㎥(t)에 이른다. 이는 발트해 바닷물 양의 20배가 넘는다.
수증기 농도는 대기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기가 따뜻할수록 많은 수증기가 발생한다. 물리학의 '클라우지스 클라페롱 법칙'에 따르면 공기는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약 7%의 수증기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그러니 기온이 올라갈수록 강도 높은 폭풍우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50년 동안 열대 지역 바닷물 온도는 0.5℃ 상승했다. 지구과학자들은 이를 허리케인이나 태풍과 같은 열대성 폭풍의 에너지 증가율이 70%가 넘는다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
온난화 증폭시키는 되먹임(feedback)
2014년 서울대와 미국 마이애미대(University of Miami) 공동연구 결과 대기 중 수증기가 이산화탄소처럼 인간 활동에 의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출처 The Science & Technology) 연구팀은 1979부터 2005년까지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위성이 관측한 지상 약 5~10㎞의 대류권 상층의 수증기량을 분석했다.
위성에서 관측한 대류권 상층의 수증기는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팀은 최근 30년 동안 상층 대류권 상층의 수증기 증가가 인간 활동의 영향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후를 시뮬레이션하는 모형(Model)을 이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화산 활동이나 태양 활동 변화 같은 자연현상만을 고려한 경우에는 대기 중 수증기량의 변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반면 이산화탄소 증가 같은 인간 활동의 영향을 고려한 경우, 대류권 상층의 수증기량 변화를 설명할 수 있었다.
대기 중의 수증기 증가가 인간 활동의 결과란 것을 확인했다는 것은 인간이 추가적으로 만들어낸 대기 중 수증기가 기온 상승 → 수증기 증가 → 기온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지구온난화를 증폭시키는 되먹임(feedback)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1년에 1ppm 단위로 CO2 농도 증가
IPCC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1년 한해 동안 인간 문명이 배출한 온실가스량과 지구생태계의 흡수량을 계산해 발표했다.
지구시스템과학데이터 '글로벌 탄소수지 2022(Global Carbon Budget 2022)'에 따르면 배출량과 흡수량을 모두 계산하면 2021년 5.2GtC(기가탄소톤)의 탄소가 대기중에 추가로 배출됐다.
1850년에서 2020년까지 지구상 누적 탄소배출량은 455(±25)GtC였다. 이 기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 46%는 석탄에서 35%는 석유, 14%는 천연가스, 3%는 시멘트 제조, 1%는 플레어링(폐가스와 증기 소각처리)에서 발생했다.
1850년까지만 해도 영국이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2%를 차지했다. 1917년 이후에는 미국의 누적 배출량이 가장 컸다. 1850년에서 2020년까지 미국의 누적배출량은 110GtC로 전세계 배출량의 25%를 차지했다. 유럽연합(EU)은 80GtC로 18%, 중국은 60GtC로 14%를 차지했다.
2021년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순위는 중국(31%), 미국(14%), EU27(8%), 인도(7%) 순이었다. 상위 5개 국가가 전세계 배출량의 59%를 차지했다.
토지 이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열대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 2012~2021년 브라질(열대우림 벌채)과 인도네시아, 콩고민주공화국 세 국가가 전세계 토지 배출량의 58%를 차지했다.
IPCC는 보고서에서 "6000만년 전에는 현재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1만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1ppm 정도였다"며 "1850년 이후부터는 1년에 1ppm 단위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변했다"고 강조했다.
IPCC는 지금과 같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과거에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증가 속도가 전례 없는 것이라는 걸 강조했다. 지구 역사상 적어도 600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봤을 때 전례 없는 속도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