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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하 정중앙에 슈퍼 블랙홀이 있다

2023-10-31 00:00:01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지구는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2만6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2만6000년을 달려가야 도달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 거리를 1000조 분의 1의 척도로 줄여 보자. 그러면 이는 대략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가 된다. 같은 척도로 지구를 줄여보면 지구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의 크기로 줄어들고, 인간은 원자핵만큼 작은 존재가 된다.

그러니 지구에서 은하 중심부의 별을 관찰한다는 것은 대구에 있는 바이러스가 서울시청에 놓인 박테리아 하나를 관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은하의 중심이 어딘지는 어떻게 정한 것일까?



1930년대 초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칼 잔스키(Karl Jansky)는 대륙간 전파통신을 위해 단파 안테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만든 안테나는 방향 조절이 가능해 전파가 날아오는 방향에 맞출 수 있어 전파통신에 안성맞춤이었다. 문제는 잡음이었다. 깨끗한 전파통신을 방해하는 잡음의 원인을 찾던 잔스키는 독특한 잡음이 매우 규칙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천파 천문학의 시대를 연 칼 구쓰 잔스키(Karl Guthe Jansky 1905-1950)와 단파 통신을 위해 제작한 전파 안테나.


하루에 한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잡음은 다름 아닌 우리 은하 중심부에 위치한 궁수자리에서 날아오는 전파였다. 전파천문학의 탄생을 알리는 발견이었다.

우리 은하 가운데서 들려오는 소리

외계에서 날아오는 전파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궁수자리 속 어느 별에서 나오는 전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은하계 중심부에는 워낙 많은 별들이 밀집해 있고 또 성간 먼지로 가득 차 있어, 전파원은 마치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광학망원경으로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은하와 태양의 위치, 그리고 은하 중심부에 위치한 궁수자리(Sagittarius) A* 블랙홀.


1950년대에 들어서자 직경 20m를 넘는 커다란 전파망원경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이 전파원의 위치도 정밀하게 결정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이 전파원에 궁수자리A란 이름을 부여했다. 궁수자리A는 우리 은하 중심에서 빛을 내는 등대와 같은 존재였다. 천문학자들은 아예 궁수자리A를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1958년의 일이다.

전파망원경의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해가자 궁수자리A가 하나의 천체가 아니라 여러 전파원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알려졌다. 그 중에는 아주 작지만 강한 전파를 내는 궁수자리A*(A star)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별의 이름에 별표 '*'를 붙일 정도로 이 별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블랙홀 촬영을 가능하게 한 EHT 전파망원경 배열. 미국 남미 유럽의 전파 망원경들이 서로 연동돼 커다란 간섭계를 만든다. 출처: 미국 국가 전파 천문대(NRAO, National Radio Astronomy Observatory)


전파를 내는 이 별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으나 그 주변의 별들이 궁수자리A* 주위를 돌고 있는 모습은 관찰할 수 있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라인하르트 겐젤(Reinhard Genzel)팀의 조사에 따르면 궁수자리A*는 블랙홀이 확실해 보였다.

천문관측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나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은 적응광학(Adaptive Optics)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대기의 요동에 의해 흔들리는 별의 영상을 보정해 또렷하게 촬영할 수 있다.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안드레아 게즈(Andrea Ghez)는 이 기술을 적용해 궁수자리A* 주위를 돌고 있는 별의 운동을 관측했고, 이로부터 궁수자리A*의 질량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 (Chandra X-Ray Observatory)로 찍은 Sgr A. 가운데 밝은 부분이 궁수자리 A* 이다. 출처: NASA Chandra X-Ray Observatory and Penn State University(link is external).


게즈 팀이 발표한 궁수자리A*의 질량은 실로 어마어마한 값이었다. 자그마치 태양질량의 400만배나 되었다. 태양 같은 별들이 400만개가 한군데 뭉쳐있으니 블랙홀이라 하더라도 초대질량(Supermassive) 블랙홀임에 틀림없었다. 초대질량 블랙홀이란 보통 태양질량의 10만배를 넘어서는 블랙홀을 말한다. 라인하르트 겐젤과 안드레아 게즈는 우리 은하 중심에 이런 거대한 블랙홀이 있음을 발견한 공로로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슈퍼 망원경으로 은하 정중앙 블랙홀 촬영

블랙홀은 빛조차 빨아들이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의 빛은 관측이 가능하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Event Horizon Telescope (EHT) 가 찍은 궁수자리 A* 블랙홀의 모습. 출처: EHT Collaboration https://www.eso.org/public/images/eso2208-eht-mwa/


천문학자들은 전세계에 흩어진 전파망원경들을 엮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라 불리는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을 만들었고, 마침내 이 신기술을 통해 궁수자리A* 블랙홀 모습을 촬영해냈다. 2022년 5월의 일이다.

블랙홀은 더 이상 상상속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 은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은하들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홀에 대한 인류의 탐험은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