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러 밀월과 미래에 대한 고민
가요 '잊혀진 계절' 속 가사인 '10월의 마지막 밤을~'을 읊조리며 행복을 상상하는 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62년 전 어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구(舊)소련의 수소폭탄 '차르 붐바'의 폭발실험이 있었다. 그 파괴력은 TNT 50메가톤급이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15킬로톤급이니 엄청나다는 것 외에 상상이 잘 안된다. TNT를 가득 실은 5톤 트럭이 서울~부산 거리 만큼 줄지어 선 다음 일시에 폭발하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굳이 그 파괴력이 가슴에 와닿을까?
북한도 2017년 6차 핵실험을 통해 차르 붐바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히로시마 원폭의 최대 20배 규모의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런 극강의 무기로 무장한 북한과 러시아가 다각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실 북러의 '밀월'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동안 이해타산의 계기가 없었을 뿐이며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고전한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관심을 가지자 독자적 핵 능력 고도화와 고립 심화에 한계를 느끼던 북한이 이에 호응하면서 밀월이 전격적으로 나타났다.
북-러 밀월관계 이면적 의미 읽기
이 둘에게 밀월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심각한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UN 창설 이후 최고 수준의 제재를 받고 있고, 러시아 역시 미국의 다양한 제재를 받아왔으며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그 강도는 더 심해졌다.
둘째, 핵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대항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올해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로, 북한은 다양한 핵·미사일 실험과 위협으로 핵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만약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북한이 핵보유국의 범주에 들어선다면 NPT 체제는 그 신뢰성을 빠르게 잃을 것이다.
셋째, 독재권력을 위해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푸틴은 1999년 이후 총리-대통령직을 번갈아 가며 최고 권력을 한번도 놓지 않았으며, 그가 정적 암살은 물론 주변국과의 무력분쟁까지 독재 유지에 활용한다는 점은 이미 정설로 굳어진지 오래다. 김정은 역시,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배곯는 주민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러의 밀월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가? 이 밀월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에 어렵더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주목해야 할 이 밀월의 이면적 의미는 첫째, 중화(中華)사상으로 무장한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려 했기에, 제3국이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전략경쟁 중인 미국의 제재를 받는 동병상련의 러시아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둘째, 푸틴과 김정은은 이 밀월을 대대적으로 선전함으로써 제재와 고립 심화, 그리고 체제 생존 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을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그만큼 내부에 상황 극복 동력이 고갈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셋째, 대미(對美) 파급력이다. 바이든정부는 향후 역량 소모가 불가피한 대북·러제재를 시도할 것이나 만약 그 시도가 내년 11월 미 대선의 중요 지표인 국내경기, 특히 이른바 캐스팅 보트인 '경합주(swing state)'의 경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후속조치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중동사태는 얼마 전 상무부장관을 방중(訪中)시켜 통상문제 논의 등 대중 견제 수위를 조절하면서까지 '대선 전 내수경기 활성화'라는 급한 불을 끄려는 미국정부에 기름을 부었기에, 미중 경쟁의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 수위조절 가능성 염두에 둬야
따라서 북러밀착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중국, 북러의 내부 상황, 미중 전략경쟁 동향을 국익의 관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디리스킹으로 표현되는 미중 경쟁의 수위 조절 속에서 배터리와 그 원료의 생산-판매 루트 개척 등 우리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경제안보적 접근, 핵 잠재력 신장을 위한 대외협력, 굳건한 한미동맹 기조하에 한중 고위급 회담 등 북러 밀월관계를 이완할 수 있는 대중국 접근, 그리고 북한당국의 대내선전이 거짓임을 알릴 수 있는 대북 정보 유입 등을 추진해야 한다.
안보를 위한 고민은 멈출 수 없고, 위기에도 기회는 있다. 한반도를 더 큰 위험에 밀어 넣는 북러의 '밀월' 속에서도 우리의 후세가 웃고 있는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