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신장애인에 관심없고 지방 안가는 의사의 증원 '무슨 소용'

2023-11-07 11:30:04 게재
박종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 센터장

얼마 전 경남의 한 의료원에서 전문의를 채용하는데 연봉 3억6000만 원이라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지원자가 없다가 채용공고를 다섯 번이나 낸 후에야 내과 전문의 한 명을 채용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의아했다. 도대체 의사는 어떤 직업이길래 이토록 많은 연봉을 제시해도 지방으로 오려 하지 않는 것일까.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 의료원이 일찍부터 전문의가 공무원과 불화 때문에 역량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 여가 문화를 누릴 시설이 없는 척박한 환경, 외로움, 수도권 의사들이 전문성을 키워갈 때 자신은 지방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늘어난 정신건강의학과 서울 개원, 지방에는 얼마나 갈까

3억6000만원이라는 돈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센터에서 한 푼도 안 쓰고 15년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거액이다. 척박한 세상에서 특별한 기술도 없이 악다구니로 살아가는 서민에게 만약 저만한 돈을 주면서 일을 시킨다면 어느 누가 거절할까. 십중팔구는 기꺼이 지방으로 내려가 일을 할 것이다. 한 5년, 10년만 일하고 수도권으로 올라와 편하게 살자라는 심리가 클 것이다.

반면 전문의들에게 그깟 '3억원'은 수도권 아무 데서나 개원해도 몇 달에 벌 수 있는 돈일 개연성이 크다. 그러니 술 한잔 편하게 마실 공간도 없고 문화적으로 척박한 지방에서 굳이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 이런 부조리가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정부는 의대 정원을 매년 1000명씩 증원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의료 진영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의료 인력과 이에 따른 지방과의 기형적 불균형의 해소, 공공의료 강화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의료 진영은 증원이 문제가 아니라 소아과 등 필수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의료 환경의 개선을 주장했다.

필자가 일하는 직역인 정신보건 진영에서도 비슷한 논리였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정신과 의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을 지적했다. 이들은 인권 문제에서 과도하게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판례, 과도한 입원 규제 등으로 의사들이 입원병실 근무를 기피한다고 밝혔다. '의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요구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 시내 개인 병원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는 232곳이 늘어나 76.8%의 증가율을 보였다. 전체 진료과목 중 가장 많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MZ세대를 위주로 정신과 치료를 어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최고 인기과가 됐다.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삶에 도움되는 의대증원 희망

그런데 여기서 전문의 중 지방으로 내려갈 이가 몇 명이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개원한 정신건강학과 의사들에게 연봉 3억6000만원은 어떤 의미일까. 지방에서 '개고생' 하지 않아도 수도권에서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일까. 정신과에 한정해 말하자면 정신과의사 정원은 정신장애인의 치유와는 별 상관성이 없다고 말해야겠다.

정신장애인의 70%가 기초수급권자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고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에서 나오고 싶어도 당장 거주할 공간이 없기에 병원에서 '시설화병'에 걸리는 문제를 두고 의사의 증원만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국 5개 국립정신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은 41%에 불과한 수준이다. 과연 의대 증원이 관철된다 해도 정신과를 택한 전문의들이 '박봉'에 시달리는 국립정신병원을 기꺼이 선택할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국가와 의료권력의 다툼 앞에서 정작 치료의 주체인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삶의 요구는 사라져버린다. 권력과 권력의 다툼 앞에서 약자인 정신장애인의 온전한 회복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도 억울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부유하는 삶과 밀착되지 않은 의사 증원은 헛된 말장난이다. 그리고 의사들의 증원 반대 투쟁 역시 직역 이기주의로 끝맺을 확률이 크다. 3억6000만원의 연봉에도 지방에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신과 의사가 이만한 연봉을 제시해도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대 증원과 양성과정에 대해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게 옳은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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