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박근혜 승부수'로 반전" … 여, 조기전대론 '꿈틀'

2023-11-28 11:07:21 게재

2004년 총선 3주전 전대 통해 '박근혜 대표' 선출, 기사회생 전례

김기현 체제·비대위 충돌 … "전대 통해 새 리더 세우는 게 정도"

내년 총선을 앞둔 국민의힘 내에서 지도체제 논쟁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총선 승리에 대한 절박감이 커질수록 '이길 수 있는 지도체제'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치러야한다는 주장으로 정리되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비상대책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반박이 잇따른다.
축사하는 김기현 대표 | 2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대한민국특별자치시도협의회 출범식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여권 일각에서는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로 가야한다"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을 주장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3주 앞두고 '박근혜 체제'를 출범시켰던 전례를 모범답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28일 인요한 혁신위가 잇단 설화와 기득권(지도부·윤핵관·중진 의원)의 저항으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된 가운데 당내에서는 총선 위기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대로 가면 총선은 어렵다"는 고민이다. 한동안 잠잠해졌던 지도체제 논쟁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당내에서는 한때 '한동훈 비대위' 주장이 부각됐다. 김 대표가 물러나고 한 법무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이었다. 이때 '윤심'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용 의원이 지난 23일 "김 대표 체제로 끝까지 가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비대위론은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가 무력화되면서 당내에서는 "무슨 수라도 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26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 비대위 전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12월 초에 예산국회가 끝나고 나면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국회 이후에 지도체제 논쟁이 재부상할 것이란 얘기다.

이런 가운데 여권 일각에서는 김기현 체제도, 비대위도 아닌 새로운 지도체제 선출을 주장하고 나서 주목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 지도부를 흔들면 안된다. 안정감이 중요하다" "지도부를 비대위로 바꿔 쇄신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김기현 체제나 임시방편인 비대위가 아니라 정식 지도부를 선출해 당의 역동성을 입증하고 국민에게 새 리더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27일 "어려운 때일수록 편법이 아닌 정공법을 택할 필요가 있다"며 "(총선까지)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 충분히 전대를 치를 수 있다. 전대를 통해 새 대표를 선출하면 (총선) 구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이 택했던 수순을 언급했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 정당' '노무현 탄핵 역풍'에 직면하면서 "50석도 어렵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2003년 6월 전당대회에서 한국 정당사 최초로 23만 대의원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최병렬 당시 대표는 당이 위기에 처하자 2004년 3월 대표직을 내려놨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불과 3주 앞둔 2004년 3월 23일 전당대회를 열어 박근혜 대표를 선출했다. 박 대표는 선출되자마자 '천막당사'에서 총선을 진두지휘하면서 당초 우려를 깨고 121석이란 선전을 일궈냈다. 엄청난 위기를 맞았던 한나라당은 최병렬 대표의 사퇴 결단과 박근혜 대표라는 승부수를 통해 이를 돌파해낸 것이다. 여권 주류인 친윤이 만약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대를 치른다면 한동훈·원희룡 등을 내세울 것으로 점쳐진다.

28일 여권에서는 "아직까지 조기전대론은 성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가 조만간 좌초해 그 책임론이 김기현 대표에게 번진다면 당내에서는 지도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되면 '윤심'이 결정하는 비대위보다 당심과 민심이 전대를 통해 선택하는 새 지도부가 낫지 않겠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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