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넘는 초고금리, 나체 사진 요구' 불법대부계약 기승 … '계약 무효' 시동

2023-12-07 10:52:01 게재

금감원·법률구조공단 '반사회적 계약 사례' 선정 … 무효 소송 적극 지원, 첫 판결 나올 지 주목

급전이 필요한 A씨는 마침 오픈 카카오톡 링크가 포함된 대출 문자를 받았다. 기재된 전화번호로 연락을 한 A씨는 불법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대출 전에 가족과 지인, 회사 사람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용과 프로필이 있는 번호가 나오도록 스크린샷을 찍게 하고 그 사진을 요구했다.


또 A씨의 핸드폰 연락처 전체를 확보한 후 채무를 독촉해도 동의한다는 차용증까지 작성하도록 했다. A씨에게 20만원을 빌려준 후 일주일 만에 38만원을 상환하게 했다. 실제 입금액은 28만원이지만 차용증에는 38만원으로 적게 했다. 연환산 4693%에 달하는 초고금리인 셈이다. A씨는 상환기간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불법추심하겠다는 협박에 두려워했다.

B씨는 21세의 조카(여성)가 불법사채를 여러 건 이용해 갚지 못하자 불법사채업자로부터 상환 독촉 연락을 받았다. 조카가 30만원을 빌리면 50만을 갚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700만원 이상을 보냈는데도 불법사채업자는 원금상환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계속 상환을 요구했다. 연환산 3450%의 초고금리를 받은 것이다. 조카는 나체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금전을 추가로 빌려주겠다는 요구에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도 했다. B씨는 너무 걱정스런 마음에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신고했다.

금감원은 7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A씨, B씨 사례 등과 같은 '반사회적 대부계약'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A씨 사례의 경우 금감원은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고금리를 부과하고, 지인 연락처를 요구·수집해 불법 채권추심에 이용한 경우 대부 계약 자체가 반사회적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부업법을 위반한 미등록 대부업체가 이자제한법상 최고 이자율을 초과하는 폭리를 취하는 불법적인 계약을 체결했고, 대출 조건으로 가족·지인·회사동료 연락처 일체를 요구·수집한 것은 괴롭힘과 협박, 명예훼손 등 불법 채권추심을 전제로 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은 "지인 연락처를 이용해 채무자 및 가족의 사회적 명예를 실추시키고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했으며, 그 피해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불법 대부업체의 부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하기 보다는 규제 강화를 통해 채무자를 보호할 공익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대부계약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무효"라고 말했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를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명시하고 있다. 반사회성 요건에 대해 법원은 판례를 통해 '법률행위가 유효한 경우 부작용, 거래자유 보장 및 규제의 필요성, 사회적 비난 정도, 당사자 간 이익균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B씨 사례에 대해 "나체·신체사진 등의 요구·수집은 그 자체로 성착취에 해당하고, 연체시 추심 과정에서 사진 합성·유포·협박 등으로 추가적인 성착취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며 "성착취를 이용한 추심은 성폭력처벌법 등 실정법 위반일 뿐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 존엄성 등 채무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은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접수된 사건 중 약 10건을 선정해 무료소송을 지원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불법사금융 피해자 신고를 받아 불법대부계약 무효소송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에서 해당 계약이 민법상 반사회적 계약으로 인정될 경우 원금을 포함한 불법 대부계약 전체 무효가 법리상 가능해진다. 피보험자를 살해해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체결된 보험계약을 무효로 판결하거나, 성매매 유인·권유·강요의 수단으로 금전을 대여하는 행위를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 판단해 무효라고 판결한 사례는 있다. 그동안 불법대부계약을 반사회적 계약으로 판결한 사례는 없지만 이번에 첫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금감원은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 무효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송을 지원함으로써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이 불법대부계약으로 인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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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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