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전하는 참의료인들
"인술 펼치는 의료인으로 사는 것이 큰 기쁨"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자들 … 장애 딛고 구강건강 알리기, 22년간 섬주민의 건강을 밤낮없이 돌봄
'김우중 의료인상'은 고 김우중 대우 회장이 출연해 시작된 대우재단의 도서·오지 의료사업 정신을 계승하고자 2021년 제정됐다. 김우중 의료인상 선정위원회(위원장 임채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장기간 인술을 펼쳐온 한국의 슈바이쳐와 나이팅게일을 선정해 김우중 의료인상 의료봉사상 공로상을 수여한다.
김선협 대우재단 이사장은 "의료취약지역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곳의 주민들은 뜻있는 의료인들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며 "김우중 설립자가 45년전 무의촌 4개 지역에 병원을 세웠던 정신을 계승해 소외된 곳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는 참된 의료인을 찾고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에는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 치과클리닉 교수(치과의)와 정향자 통영시 추봉보건진료소장(간호사) 2명을 포함해 총 8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9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한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불의의 사고로 중증 장애인이 됐다. 활동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5년간 진료 현장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예방치의학을 실천하고 개척해 왔다.
이 교수는 치의대 본과 3학년 때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휠체어를 타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졸업해 세계 최초의 중증 장애인 치과의사가 됐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 교수는 치료보다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방치의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동시에 2008년 용인시기흥장애인복지관을 시작으로 이 교수는 경기도와 대전의 8개 복지기관을 찾아가 장애인에게 구강건강의 중요성과 예방법을 알리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의사라고 잘 믿지 않는 경우도 있어 외부 의료봉사 활동을 갈 때에도 꼭 의사 가운을 입고 휠체어를 탄다. 사고 전에는 최고의 치료가 올바른 인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 후에는 최선의 진료가 뭔지를 더 고민한다. 이 교수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알기에 환자의 환경 정신 습관까지 꼼꼼히 살피며 깊게 진찰하고 매번 따뜻한 희망의 말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교수는 봉사에 그치지 않고 현장 데이터와 임상 사례를 모아 연구 논문으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10여편 이상의 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의료취약계층은 사후 치료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며 의료취약계층의 구강건강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싶다"며 "장애인 의사는 10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어제보다 '조금만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향자 통영시 추봉보건진료소장 =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한 정향자 추봉보건진료소장(간호사)은 1994년 통영시 노대보건진료소에 첫 부임한 이후 30년 근무기간 중 22년간 의료취약지역인 통영시 4개 섬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정 소장은 연 2000회 이상의 진찰과 투약을 하며 섬 주민들의 건강을 돌봐왔다. 태풍으로 무너진 담벼락에 깔린 부상자나 새벽에 찾아온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도 24시간 응급 의료를 제공하며 주민의 건강을 지켰다. 1995년 노대보건진료소 근무 당시 새벽 2시경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깨 자상(대략10cm)으로 내원한 초등학생이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자비로 치료하고 아버지와 알코올 중독 치료를 고민하고 자주 상담하며 개선시키기도 했다.
정 소장은 의료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2010년 7월 통영시에서 경제성 등 사유로 용호보건진료소 취임 한달만에 폐소 결정돼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주민들의 지원과 함께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보건진료소가 지속돼야함을 강조하고 노력해 복원시켰다.
정 소장은 2018년 보건소사업으로 65세 이상 치매 전수조사를 벌여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적극적으로 건의해 2021년 노대보건진료소에 원격화상진료를 도입했다.
정 소장은 "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섬에서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진료소가 지금껏 농어촌 주민들과 함께 해왔던 것처럼 바른길과 치우침 없는 삶을 살아가자는 태도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선 대한방사선사협회 방사선사 = 이번에 의료봉사상을 받은 유명선 대한방사선사협회 방사선사는 아버지가 의사였다. 왕진을 같이 가면서 자연스레 의료인과 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994년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잃었지만 소록도를 찾아 10년간 자원봉사를 했다.
의료봉사는 후배와 함께 '1톤 트럭'을 사서 엑스레이 장비를 싣고 시작했다. 국내에서 노숙자 쪽방촌 외국인노동자들을 찾아다니다가 2004년 기독방사선선교회 봉사단체를 조직했다. 2011년 KOICA 네팔 의료봉사를 떠난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올 6월 라오스 의료봉사 때 최신 의료장비를 갖춰 의료진만 48명이 참여했다.
유 방사선사는 "의료는 '1+1' 행복을 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기술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힘이 되는 한 계속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석 아주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 김우중 의료인상 봉사상을 받은 정윤석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학생 때부터 봉사를 생각했다. 1992년 세브란스 펠로우 시절 몽골의료봉사로 시작했다. 다양한 소외계층을 찾았으나 점차 '국내 외국인' 특히 국내 의료보장시스템에 들어와 있지 않아 공공의료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갔다.
2007년 아주대의료원에서 의료봉사동아리를 만들었다. 자발적 조직으로 절반은 자체 회비, 절반은 의료원에서 지원해준다. 보통 일요일에 의료봉사를 했다. 봉사 초기는 진료하고 투약하는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혈액검사 초음파 심전도 치과치료까지 발전했고 약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가 동행하는 '작은 병원'이 됐다. 정 교수는 "국경없는 의사회같이 종교적 배경이 없는 의료봉사단체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우석 경상북도의사회 회장 = 김우중 의료인상 봉사상을 받은 이우석 경상북도의사회 회장(안과의)은 1998년부터 영동안과의원 운영했다. 선친이 의사였다. 병상이 모자라면 집 한켠을 내준 선친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버지로서 의사로서 그 삶을 존경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의사가 되고나서 늘 봉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상북도 다문화 이주여성의 친정 국가들 중 하나인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를 겪으며 의료시스템이 붕괴됐다. 의료봉사의 손길이 절실해 시혜적 봉사 형태를 벗어나 매년 방문했다. 지난해 돌본 환자를 점검하고 현지 의사 교육을 실시했다. 올해 8월 100여명의 종합병원과 같이 유기적으로 다양한 과(경북의사회, 경북치과의사협회, 경북한의사협회, 경북간호협회 등) 봉사단이 캄보디아 캄퐁 톰주에서 4030명 환자를 돌봤다.
이 회장은 "봉사는 남을 도우면서 도리어 내가 받는 기쁨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앞으로도 봉사하는 삶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병찬 전 신안·완도대우병원 원장 = 김우중 의료인상 공로상을 받은 곽병찬 전 신안·완도대우병원 원장은 당시 이원덕 선생의 영향으로 1989년 신안대우병원에 오게 됐다. 평소 섬이나 오지에서 살고자 했고 하고 싶은 일(의료활동)을 하게 돼 행복했다.
대우병원은 전주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검사실 초음파 수술실 치과 등 시설이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었다. 독사(뱀)에 물린 환자, 복어 독을 섭취한 환자, 분만, 24시간 환자 진료 등이 가능했다.
대우병원에서 배운 의료기술로 의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책상에 컴퓨터가 없다. 대우병원에서 하던 방식대로 환자의 치료 뿐 아니라 가족사항, 환경 등 이야기를 많이 듣고 직접 차트 작성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거주하는 환자의 경우 직접 방문 진료를 한다. 곽 전 원장은 "살아있는 한 아픈 사람들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가족같이 돌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무주군보건의료원·대한여한의사회 = 김우중 의료인상 봉사상을 받은 단체로는 무주군보건의료원(황인홍 무주군수)과 대한여한의사회(박소연 회장)가 있다. 무주군보건의료원은 1999년 대우병원의 폐원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지역의료 확충이 필요했고 대안으로 진료 기능과 예방적 보건사업을 할 수 있는 현재의 보건의료원으로 2002년 개원했다. 보건의료원은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신념아래 연령대에 따른 질환 예방과 관리한다. 대한여한의사회는 국민건강 수호와 의료전문직 여성으로서 책임 수행을 다하고자 1965년 설립됐다. 미혼모, 위안부 여성, 발달장애인 가족, 탈북 아동쉼터, 보호처분 청소년 시설 등 의료봉사, 여성 폭력추방 캠페인, 새만금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한의진료센터 의료지원 등 사업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