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암 정복에 한걸음 더 다가간 CAR-T세포 치료법
CAR-T세포 치료법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T세포를 개조해 암세포를 더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개발한 방법이다. T세포는 원래도 몸속에서 감염된 세포나 상태가 좋지 않은 비정상 세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완벽하진 않아서 비정상적인 세포를 모두 제거하진 못한다. 이로 인해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동안에도 제거되지 못하는 비정상 세포가 쌓인다. 그리고 이중 일부는 암세포로서 계속해서 불어나 암 조직이 크게 자랄 수 있다.
T세포가 암세포를 보다 잘 찾아내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도록 개조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정상세포에게는 없지만 암세포에는 존재하는 특징적인 항원을 활용했다. 이런 항원을 훨씬 잘 인식하고 T세포의 면역반응이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조작한 인위적인 단백질도 개발했다. 이 인위적인 단백질이 바로 키메라 항원 수용체(Chimeric Antigen Receptor)인 CAR 단백질이다. 이러한 CAR 단백질을 들고 다니도록 개조한 T세포를 CAR-T세포라 부른다. CAR-T세포는 환자의 몸속을 돌아다니며 CAR로 인식되는 항원을 찾아 그 암세포를 제거한다. 암세포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러한 CAR-T세포 치료법은 실제로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를 보인 바 있으며, 향후에는 훨씬 더 다양한 암종에 효과를 보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고형암 치료 가능성 열려
다만 현재로서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비용 외에도 몇몇 주요 문제점이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혈액암이 아닌 고형암, 즉 흔히 생각하는 암 덩어리가 자라는 암은 암세포 조성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고형암에서는 정상세포와 확연히 차이가 나며 암세포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항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항원을 인식하고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는 CAR 단백질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 돼 CAR-T세포 치료법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동 연구진은 이러한 CAR-T세포 치료법을 해결하기 위한 미생물 요법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해당 연구진은 고형암 내 다양한 암세포를 모두 단 하나의 공통된 항원으로 표지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복잡한 암세포의 다양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CAR를 일일이 개발하는 것보다는, 이 단 하나의 공통된 항원을 인식하고 암세포를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이 새로운 CAR 단백질로 무장된 T세포는 체내에서 떠돌다 인위적으로 도입해준 공통된 항원을 찾을 테고, 그 항원을 찾고 나면 암세포를 제거한다. 복잡성과 다양성이 높은 고형암까지도 치료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일한 항원을 암세포에 붙여줄 역할을 수행할 주체로 미생물인 세균을 선택했다. 몇몇 세균은 저절로 고형암 조직을 찾아가 그 중심부에 자리 잡고 불어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고형암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셈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세균 중 감염성이 없는 대장균을 조작해 기능을 추가했다. 이 세균들이 고형암을 찾아가 그 안에서 불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암세포에 인위적인 항원을 붙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더해 CAR-T세포가 좀더 쉽게 고형암을 찾아와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도록 면역반응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분자까지도 추가해줬다. 암 조직이 자리잡고 있는 몸속에 이 세균을 주입하면 고형암의 암세포가 모두 단 하나의 공통된 항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준비된 대장균과 CAR-T세포를 활용한 치료법을 생쥐 모형 등에서 시험했고, 실제로 고형암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암도 관리가능한 질환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방법론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장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고형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수술, 화학 및 방사선 요법 외에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론은 이처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암 백신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법이 보다 확실한 효과와 안정성을 입증받게 되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암이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이 아닌 관리하는 것이 가능한 질환으로 취급받고, 환자들이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