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2024년 국제정세와 한국의 길
유럽과 중동에서 두개의 전쟁과 함께 시작된 한해는 어지럽기 그지없다. 전쟁 발발 2년을 코앞에 둔 우크라이나전쟁은 쉽게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전쟁지속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원에 기대 전쟁을 수행해온 우크라이나는 작년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원예산이 중단되면서 곤경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대만 지원을 위해 하원에 요청한 1060억달러에 달하는 안보예산 중 우크라이나 지원분은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540억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두고 회원국 간에 갈등 중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도부 척결과 전쟁수행능력 무력화의 목표를 내걸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네타냐후정권을 견제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국내정치 문제와 맞물린 공세가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헤즈볼라와 연결된 이란 역시 이스라엘과 대립해 중동 지역질서 전체가 혼돈의 와중에 있다.
미중, 대리전 통해 새로운 균형 찾을 것
여러 지역의 군사충돌은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이러한 대리전을 통해 각자의 세력을 평가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은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지만 결국 냉전적 대립으로 맞서게 된다. 소위 냉전은 '전투 없는 전쟁'으로 미소가 주도하는 양대 진영 간의 광범위한 경쟁과 대립이 격화되었던 국제정세를 의미하고 1991년 소련이 몰락하기까지 유지되었다.
인류를 파멸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이 한차례도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핵전쟁의 위험을 피했기에 냉전은 '긴 평화(long peace)'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미소 양국의 입장에서 내린 평가이고 냉전은 초기부터 작고 뜨거운 열전으로 얼룩져있었다. 시작은 한국전쟁이었다. 우리에게 처절한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통해 미소는 대리전을 벌였고 중국은 인민지원군의 형태로 참전해 냉전의 문법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베트남 앙골라 중미지역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끊임없는 대리전이 펼쳐졌고 이를 통해 강대국 간 긴 평화가 유지되었다.
2024년은 미국 중국 러시아가 자신들의 군사력, 경제력, 동맹 및 전략파트너와의 결속력, 지구여론에 대한 영향력 등을 대리전을 통해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동시에 핵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핵무기가 분쟁당사국들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합의를 추구하면서 최소한의 위기관리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작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은 위기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미중 간 합의를 보여준 계기였다.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언급을 자제하도록 발언한 것도 이러한 추세를 보여준다.
올 한해 어느 지역에서 어떤 고질적인 분쟁 테러 등이 또다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약화된 현재 많은 세력들은 군사력을 사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고, 치열한 지정학 경쟁을 벌이는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분쟁에는 다양한 대리전의 형태로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고 뜨거운 열전들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강대국들 간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정착될지 알 수 없지만 올 한해가 그 시험대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첨단기술이 미중 장기적 경쟁 향방 좌우
한해 동안 단기적인 분쟁들과 더불어 장기적 전략경쟁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강대국 간 전면전 가능성이 낮은 만큼 차가운 평화(cold peace)가 오겠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4차산업혁명 기후위기 보건위기 인구변화 등 장기적인 추세와 더불어 치열한 구조적 경쟁이 벌어질 것은 확실하다. 각자가 안고 있는 국내적 취약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지구적 리더십을 두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 모두 국내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평가한 2023년 경제지표를 보면 미국은 세계 3위의 경제성장과 안정성을 보였다. 인플레이션과 GDP, 고용률 등을 종합한 지표에 따르면 미국은 2.3%의 경제성장률과 높은 고용률을 보였고, 경제부양의 재정 투자도 힘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이지 않은 향후 경제전망과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특히 트럼프 리스크 등은 향후 미국의 리더십에 큰 도전 요인이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 이후 기대되었던 경제부흥이 일어나지 않았고, 부동산 위기, 높은 청년 실업률, 시장에 대한 정치 개입으로 인한 국내외 투자 제한 등 다양한 악재로 고난을 겪고 있다.
장기적인 전략경쟁의 승패를 결정할 요인은 4차산업혁명의 신기술과 기후변화로 인한 그린 테크놀로지, 그리고 인구변화 등이 될 것이다. 긴 역사 속에서 2023년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본격적 사용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논의되곤 한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경제는 물론 군사 및 사회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왔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은 물론 양자컴퓨터 바이오기술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승리하는 국가가 장기적으로 지구적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첨단기술 격차를 넓히기 위해 좁은 영역에서 높은 담장을 치고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 투자제한 등의 정책으로 기술디커플링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중국의 독자적인 기술혁신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미국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춰 미국의 정책 수단을 약화시킬 것인지 등의 우려도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경쟁, 그리고 국제사회의 동향이 경제 군사 가치 등에서 전략 경쟁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날로 극심해지는 이상기후도 올해의 화두다. 국제사회는 205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로 제한하고 탈탄소 경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3년 내 1.5℃의 목표가 무너진다는 전망에 동조하는 과학자가 66% 정도 된다는 평가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신재생 에너지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2024년 관련 산업은 9%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지구 에너지의 80%는 탄소에너지일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그린테크놀로지 확보 여부가 국력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강대국 지정학과 남북대립 연결 막아야
이러한 추세는 한국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냉전 초 강대국 지정학의 새로운 문법이 한국전쟁에서 쓰여지면서 한반도는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 국지적 분쟁이 강대국 경쟁과 연결될 경우 엄청난 확전과 비극이 생산되는 것이다. 한국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대국 지정학과 남북한의 대립이 연결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북한은 이미 신냉전 전략을 구사하며 "대남 노선의 근본적 방향전환" 운운하며 군사대결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억제를 공고히 하되 남북 간 긴장을 상승시키거나 긴장이 군사적 대결로 가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현 국제정세에서 남북 간 전쟁은 미중 혹은 미러 간 강대국 대리전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한국은 독자적인 첨단기술 전략을 구체화해 꾸준히 국력을 축적해야 한다. 인공지능 신재생에너지 사이버 우주 등은 향후 한국국력을 좌우할 중요한 기술이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세계 2위의 경제적 안정성과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한국이 앞서고 있는 신기술 분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제적으로 공급망의 안정과 신기술의 선제적 취득, 그리고 주요국들과의 기술동맹 및 협력을 통해 장기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국가발전 비전과 국민의 단합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