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100일 전, 전망 포인트 | ⑥ 진보정당 위기인가, 기회인가

"정의당은 끝났다" 길 잃은 진보, '신당 바람'에 비례 의석도 난항

2024-01-09 11:21:42 게재

정의당, 진보 대표성 붕괴 … '대안신당 당원모임' 탈당 예고

정의·녹색 연합정당이나 진보당, 봉쇄기준 3% 넘을 지 주목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 군림해오던 정의당의 역사가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21대 총선이후 금이 가기 시작한 정의당의 진보진영 대표성이 사실상 붕괴되는 모습이다.

인사하는 이준석과 이낙연 |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정치권에서도 3당의 지위뿐만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정의당의 혁신을 두고 의견이 다른 사회민주당, '새로운 선택'에 이어 대안신당 당원모임도 현 지도부의 행보에 반기를 들고 탈당을 예고하고 나섰다. 진보정당이 정의당과 녹색당이 손잡은 선거연합정당, 진보당 그리고 제 3지대로 간 정의당 혁신그룹으로 분화돼 총선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거대양당의 지지층 결집에, 비례대표선거에서는 신당 바람에 진보정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9일 한국갤럽이 2022년 5월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사실상 매월 전국 18세 이상 남녀 약 4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의당 지지율은 4%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 3%나 5%도 나왔지만 대부분 4%였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 진보당을 포함한 여론조사를 하면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지지율이 절반으로 나뉘었다. 리얼미터가 이달 4~5일 양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에게 지지정당을 물은 결과 정의당과 진보당의 지지율이 각각 2.0%, 2.2%로 나왔다. 에이스리서치가 지난 1일과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정당지지도를 물어본 결과를 보면 정의당 2%, 진보당 5%였다.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 등 신당 창당을 가정한 지지도에서는 정의당 1%, 진보당 4%로 나왔다. 조원씨앤아이가 지난해 12월30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사흘간 전국 18세 이상 2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1.8%를 기록했다.

◆정의당, 해체되나 = 진보정당이 중요한 분기점을 맞을 전망이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10개 의석을 얻으며 파란을 일으킨 진보정당은 18대에서 5석(민주노동당)으로 주춤하다가 19대에서 13석(통합진보당)까지 뛰어올랐다. 하지만 20대와 21대에서 각각 6석씩(정의당)을 얻는 데 그쳤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이후 세대교체를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대선,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에서 연이어 추락했다. 정체성이 흔들렸고 당원들이 이탈했다. 결국 '당명 개정을 포함한 재창당'을 선언했다.


'인천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와 각을 세우며 사회민주당, 의견그룹 '새로운 권력' 등의 세력이 탈당했다. 박원석 전 의원, 배복주 전 부대표 등이 참여한 '대안신당 당원모임' 역시 탈당수순을 밟고 있다.

이날 박 전 의원 등은 '제 3지대 대안정당으로 노선 전환을 촉구하는 전현직 당·공직자 일동'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고 "정의당은 실패했다"며 "오랜 시간 양당 정치 밖에서 대안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익숙한 관념과 주장, 지위에 안주해온 진화하지 않은 진보의 한계 △사회운동 정당이라는 관성 △민주대연합 노선과 비례정당의 한계 △정체성 정치의 과잉과 보편 정치의 약화를 "성찰과 변화를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로 지목했다. 이어 "새로운 대안정당의 주체는 다당제 연합정치에 동의하는 정치세력부터 양당이 외면했던 시민들까지 그 폭이 넓다"며 "당이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의지와 역할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면서 탈당 예고로 풀이된다.

정의당이 오랫동안 독점했던 진보정당 대표주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진보당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진보당은 지난 지방선거와 전주을 보궐선거 등에서 선전하면서 정의당을 위협해왔다. 올 총선에는 지역구에만 100명의 후보를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미 80여명의 후보를 냈다.

◆거대 양당 결집과 신당 바람 = 거대양당에서 나온 신당들이 진보정당의 또다른 복병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당인 민주당의 전 대표들이 나와 만드는 신당이 예상외로 파괴력이 클 수 있다. 게다가 정의당 인사들도 신당을 새롭게 만들거나 선거연합을 시도하고 있어 남아있는 진보진영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거대양당의 지지층 결집 행보가 이어지면서 정치혐오가 확산, 제3지대의 신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거대양당에 지역구 표를 주더라도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제 3당의 필요성'을 기대하는 지원표로 비례대표 의석을 채워왔던 진보정당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등 신당들이 쏟아져 나왔던 지난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비례투표에서 5.68%를 얻으며 3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당시엔 민주노동당의 경쟁자였던 진보신당도 2.94%의 득표율을 보였다. 진보진영 안팎에서 도전을 받은 셈이다. 다수의 강력한 신당과 진보정당 내부에서의 경쟁구도가 진보진영의 시너지보다는 단순 나눠먹기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바람을 일으켰던 지난 20대에서 정의당은 7.23%로 4석을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정의당은 진보진영이 분열해 4당 구도로 치른 17대엔 비례투표에서 13.0%를 얻었고 3당 구도였던 19대와 21대에서는 각각 10.30%, 9.67%를 얻었다. 특히 19대에서는 진보당이 1.13%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도 두 자릿수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거대양당의 지지층 결집, 거대양당 전 대표가 이끄는 보수와 진보진영의 신당들, 그리고 진보진영에서의 대규모 이탈 속에서 남아있는 진보정당이 어떤 경쟁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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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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