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사태’ 재발 막을 수 있나
급경사지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사각지대 실태조사 법적근거 마련
7월 위험한데 8월에야 뒤늦게 시행
최근 국지성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로 인해 급경사지 등에서 사면붕괴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여름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낙석 토사유출 등 대규모 사면붕괴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 기간 급경사지 붕괴로 인한 인명피해만 44명이었다. 2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도 16명이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 같은 인명피해가 대부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급경사지로 관리하고 있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곳에서 낙석 사면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변화한 환경에 맞는 사각지대 발굴이 시급해진 셈이다.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집중호우에 취약한 급경사지에 대한 실태조사 근거를 마련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붕괴위험 지역 정비사업 기준을 고시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 상시계측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자에게 실무 교육·훈련 이수 의무를 부과하고, 행정안전부장관 등의 업무 일부를 한국급경사지안전협회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역시 마련됐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해 지난달 25일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이 대통령 재가를 거쳐 2월 중 공포되더라도 시행은 6개월이 경과한 8월에나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가 집중된 시기는 7월이었다. 박성민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한 시기는 지난해 8월. 집중호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직후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가 법안 개정에 속도를 내지 못한 탓에 결국 올 여름 적용이 어려워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난해 7월 피해가 집중된 직후 후속대책을 시행했어야 했는데 법률 개정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대응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며 “좀 더 속도감 있는 대응이 아쉽다”고 말했다.
시기는 다소 늦었지만 이번 개정법률안이 시행되면 사면붕괴 위험 사각지대 해소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등록 급경사지 관리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된 만큼 정부와 지자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안전부는 법률 개정을 계기로 그동안 관리되지 않은 급경사지를 신속하게 발굴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도로·택지 등 개발사업으로 급경사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신속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리정보시스템(GIS) 분석을 통해 붕괴 시 위험도가 높은 급경사지 2만 곳을 추출, 2025년까지 조사를 마치기로 했다. 또한 계측기기를 설치해 관리하는 상시계측관리 대상을 붕괴위험지역에서 전체 급경사지로 확대해 위험징후를 감지하는 즉시 진입통제 대피명령 등을 통해 주민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구상이다. 이 밖에도 붕괴 위험지역 특성을 고려해 사면 배수시설 설계용량 상향 등 별도의 설계·시공 기준도 마련한다. 지자체들도 개정안에 근거해 급경사지에 대한 안전조치 명령 후 표지판 설치, 지자체 누리집·공보 공개 등을 통해 주민들이 위험 사실을 인지하고 대비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한경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정부는 이번 법률 개정을 통해 기후위기 영향으로 인명피해 우려가 큰 급경사지에 대한 안전관리를 보다 강화해 사면붕괴 등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