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올봄엔 디지털 대청소를 시작해보자
우리 속담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오래된 속담이지만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요즘 세상에 오히려 더 유효한 말인 것 같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세상에 사용자로서 따라가기도 바쁘니 나도 모르는 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기 십상이다.
OTT 서비스를 이용해 원하는 시간에 TV를 보고 간단한 핸드폰 앱 조작으로 집이나 차 안의 온도를 미리 맞춰둔다. PC 핸드폰 태블릿 속 데이터들을 클라우드에 동기화해 필요할 때 장비를 바꿔가며 작업한다. 지난해 혜성같이 나타난 생성형AI들은 훌륭한 업무 파트너로 질문을 던지면 원하는 결과물을 척척 만들어낸다. 내 주변 기계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서버와 소통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이런 편리한 생활은 서버와 스토리지 시스템 등이 모여 있는 데이터센터 덕이라 할 수 있다.
24시간 끊김이 없이 운영되어야 하는 데이터센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적인 전력공급과 냉각이다. 서버와 스토리지 장비에서는 필수적으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양의 전기와 물이 사용된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데이터센터와 전송망이 각각 전세계 전력 소비량의 1.5%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섬유산업에 이어 6위를 차지할 정도다. 인공지능 서비스 확대로 데이터센터의 전기 사용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27년쯤이면 생성형AI의 전력 수요가 전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3/4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냉각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물의 양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연구에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5~50개의 질문을 할 때마다 챗GPT 데이터센터는 약 500mL의 물을 소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극과 바닷속에 데이터센터 설치 본격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면서 세계 각국이 규제에 나서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더 추운 곳, 더 물이 많은 곳, 바로 북극과 바닷속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페이스북은 스웨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노르웨이에 이미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북극권에 벌써 50개 이상의 데이터센터가 운영중이다. 최근에는 아예 차가운 바닷속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시도도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 아이디어 공유 행사에서 처음 등장한 수중데이터센터는 2015년 나틱 프로젝트로 그 실험을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수중데이터센터 개발을 추진중이다.
인터넷에 해저 데이터센터를 검색해보면 호의적인 글들을 꽤 볼 수 있다. 지구를 살리는 방법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구환경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를 얼마나 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바다는 굉장히 넓고 물의 양이 많으니 데이터센터 하나에서 발생하는 열이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바로 근처의 수온은 높아질 것이고 그 인근 생명체들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열들이 누적되었을 때 바다 전체의 수온이 오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북극권의 수온 상승과 빙하 면적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늘어나는 데이터센터도 그런 상황에 일조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해야 한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면서 화석연료를 마구 소비해대던 18~19세기에는 인간의 활동이 심각한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기술로 문제를 해결해보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깊은 바닷속에 묻으려던 시도는 산성화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를 초래해 현재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다른 물질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선회 중이다.
에너지 사용 줄이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인간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점은 에너지를 쓰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공지능 활용 서비스들만 감당하려 해도 데이터센터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유지하는 상태로는 더 이상 인간이 살기 좋은 상태의 지구환경을 유지할 수 없다. 이제는 조금 불편해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환을 해야 할 때다.
겨울이 지나면 대청소로 묵은 짐을 내보내고 가볍게 새봄을 맞이하듯 올봄엔 디지털 대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디지털 창고에 쌓여 전기와 물을 먹어대는 메일과 무작정 찍어 놓은 사진 등 오래된 디지털 데이터부터 비워보자.
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지구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