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능하지 않아도 좋은 정치인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3월 3일 10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역대 총리 64명 중 100세를 넘긴 경우는 이번이 세번째다.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라야마는 “무리하지 않고, 자연체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하루에 두번 산책과 체조를 한다”고 밝혔다.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에서 어부의 여섯번째 아들로 태어난 무라야마는 48세가 되던 1972년 일본사회당 소속으로 처음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자유민주당과의 연립 내각을 구성한 1994년 6월 30일 제81대 총리에 취임했다.
“나는 총리가 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일본 그 어디에도 없었다”라는 본인의 말처럼, 정권을 잡기 위한 격렬한 정쟁이 반복되는 일본에서 무라야마는 자신의 의지나 희망과 관계없이 정상에 오른 드문 사례이다.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은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서민적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무라야마는 예외적이었다. 역대 총리 중 재산이 가장 적다거나, 100년이 넘은 자택의 시가가 수십만엔 정도라는 것은 일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진정한 서민 정치인 무라야마 전 총리
무라야마가 총리에 취임한 직후, 주변에서는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총리의 휴가 장소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경호 등의 문제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라야마는 “나는 365일 쉬지 않고 일하는 어부 출신이다. 휴가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선진국인 일본의 총리가 휴가도 없이 일하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고려하더라도 곤란하다고 하자, 무라야마는 “그러면 어디 민박에라도 가볼까?”라고 했다. 그런데 연락을 받은 민박 어느 곳에서도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도 하지 않았고, 결국 하코네의 고급 여관에 투숙했다고 한다.
정계에서 은퇴하고 오이타로 낙향한 무라야마는 보통 자전거로 이동했다. 이것이 알려진 것은 역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초등학생과 접촉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물론 자식이나 손자가 무라야마의 지반을 이어받아 세습 정치가가 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총리로서의 무라야마에게 반드시 유능했다는 평가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에게 필요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던 무라야마는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에서 대응 조치를 지연하는 등,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총리에 취임한 후 무라야마는 미일안보조약 비판, 자위대 위헌, 원자력 발전 반대와 같이 종래 일본사회당이 견지해온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고, 이로 인한 기존 지지층의 이탈 등으로 일본사회당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무라야마지만, 100세 생일을 맞이한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역시 일본 국민들이 그를 좋은 정치인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존경받는 정치인 기대하는 건 무리?
이 글의 제목인 ‘유능하지 않아도 좋은 정치인’이란 ‘무능해도 상관없는 정치인’이 아니라, ‘반드시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존경·사랑받는 정치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혼탁한 정치의 계절, 무라야마와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한 것일까?
최종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