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플라스틱, 인류를 감싸다가 인류를 습격하다
미세플라스틱이 생수에서 발견됐다. 소금에서 발견됐다. 세탁을 하면 많이 나온다. 뇌까지 간다…. 지난 몇년 동안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미세플라스틱 뉴스들. 이런 뉴스를 접하는 날이면 불편하고 걱정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정부에 기대하지만 나오는 얘기는 미세플라스틱 규제 기준이 없다고 한다.기준을 마련하려고 보니 얼마까지 섭취해야 안전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독성정보가 부족해서 아직 더 많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한다. 몇년째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니 나부터 플라스틱을 덜 써야지 다짐하지만 이내 다시 편리하고 익숙한 예전 습관으로 돌아간다.
한때 플라스틱은 마법 같은 존재였다. 1869년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태어난 이 신소재는 세상을 바꿀 약속을 품고 있었다. 20세기 중반 패스트푸드의 부상과 함께 일회용 문화를 활짝 열며 우리의 삶을 편리함으로 가득 채웠다. 1955년 ‘라이프’ 잡지에 실린 행복한 가족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하늘 높이 던지는 이미지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의 뒤안길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플라스틱이 우리 삶의 편리함을 극대화했던 것처럼, 플라스틱이 쪼개지고 쪼개져 아주 작은 조각이 된 미세플라스틱은 그 편리함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환경호로몬 같은 영향 미칠 듯
오늘날 플라스틱은 지구 곳곳을 오염시키는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실내외 공기 식수 식품 등 우리의 일상환경은 물론 담수 해수 퇴적물 토양까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었다. 태평양의 바다 위, 북극의 빙하, 심지어는 에베레스트산 해발 8000m 꼭대기에서조차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어 이 문제가 지역적 국지적 차원을 넘어선 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환경에 미세플라스틱이 있으니 우리는 당연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되고 있다. 해산물 채소 과일 고기 우유 음료 등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품은 물론 공기 중 흡입과 화장품이나 제품을 통한 피부 접촉까지,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삶의 모든 경로를 통해 우리 몸속으로 침투한다.
인간의 혈액과 대변 샘플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고, 기증받은 시신을 이용한 연구에서 폐 간 신장 등 인체 모든 장기 조직에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모유와 태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는 이 작은 입자들이 세대를 거쳐 전달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우리의 후손에게까지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던져버린 플라스틱 조각들은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결국 우리 자신 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세가지 경로를 통해서 나타난다. 첫번째는 섭취하거나 흡입할 만큼 작은 입자 자체가 유발하는 독성이다. 두번째는 플라스틱에 포함된 수천가지의 화학물질, 즉 화학첨가제의 용출을 통한 영향이다. 세번째는 환경에 존재하는 유해한 화학물질이 미세플라스틱에 흡착되어 생체 내로 전달되면서 나타나는 영향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많은 부분에서 미지의 영역이나, 플라스틱에 첨가된 화학첨가제나 환경에서 흡착된 화학물질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영향은 우리가 수십년 동안 연구해왔던 화학물질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소제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첨가제인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 등이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이라는 것을 볼 때 미세플라스틱 역시 환경호르몬과 같은 영향을 나타낼 수 있다.
현재 겪고 있는 질환과 건강에도 관련 있어
미세플라스틱의 존재는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확히 말해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던, 그러나 간과해왔던 문제다. 우리는 이미 50년 이상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되어왔을 것이며, 결국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질환과 건강 영향에도 이미 미세플라스틱 노출에 의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진정한 도전은 단순히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플라스틱과 그로 인한 환경적 영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대응을 전체적인 화학물질 관리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지탱해온 이 편리함의 본질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최진희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독성학